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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May 18. 2023

DAY2. 모네가 살았던 곳, 고흐가 죽었던 곳

죽음은 가볍고 삶은 무겁다

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 다행히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주택가를 걷다 보니 전날 저녁에도 있던 쓰레기통이 이른 아침에도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 차 뚜껑이 벌어진 채 있다. 역시 서울이 깨끗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부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연금개혁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환경미화원이 부분 파업 중이라 한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진 편이라고, 몇 주전에는 거리마다 쓰레기가 산더미였다 한다.



파리에서 차로 한 시간쯤 달려간 <지베르니>는 부유한 마을답게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울리는 한적한 동네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모네의 집이 아직 개방 전이라 동네 빵집에서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을 하나 사서 조금 쌀쌀했지만 파리 감성으로 야외에서 마셨다.


모네는 부자였던 것 같다. 고흐와 달리 돈 많은 부인과 재혼을 해서 풍족한 노후를 보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넓은 모네의 집 곳곳에 그의 그림보다 더 많은 일본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18세기말 일본과 유럽 간에 무역이 성행할 때 일본 판화를 찍은 제품 포장지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는 얘기를 지난여름 도쿄의 한 전시회에서 들었다.

모네의 생가


모네의 집을 나와 아름답게 펼쳐진 꽃의 정원과 지하 통로를 지나 주위의 자연과 조화롭게 펼쳐진 물의 정원을 따라 산책했다. 물의 정원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일본 풍경화에 나오는 다리와 닮아 있다. 꽃의 정원이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었다면 물의 정원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수련 줄기가 떠 있는 연못과 연못을 에워싼 길에 늘어서 파릇하게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어울려 싱그럽고도 아름다웠다.


관광객이 많았다. 파리는 일찍 마스크를 안 썼다지만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 중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코로나가 몰고 왔던 비정상적인 광풍이 끝이 났구나 실감한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아 보였다. 중국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주식을 사야 할까?


모네의 생가 입구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원준이는 친구에게 줄 오르곤 두 개를 골랐다. 이곳이 얼마나 많은 해외 관광객이 오는 곳인지는 파리 대부분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용 불가했던 JCB카드가 승인이 된다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이어 또 한 시간쯤 차로 이동해 간 곳은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일을 살고 생을 마감했던 <오베르 쉬르 우와즈>이다. 고흐는 생의 마지막 70일 동안 65점의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한다. 그의 삶의 끝자락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하니 ‘죽음은 가볍고 삶이 무겁다’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그의 작품 배경인 골목길로 이어진 동네, 오베르 교회와 자살을 했다는 밀밭을 둘러봤다.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이틀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여인숙이 지금은 식당으로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고, 마을 회관과 동네 곳곳에 고흐가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렸던 그곳에 그림 패널이 있다. 그의 유명한 그림인 오베르의 교회와 똑같은 모습의 교회 앞에서 아들과 사진을 찍었다.

고흐가 그린 오베르 교회 


고흐가 자살했다고 하는 밀밭


넓은 초록의 들판과 또 한쪽은 농사를 쉬는 황토색 맨 밭, 그 위의 파란 하늘과 명암이 분명한 하얀 뭉게구름이 수채화로 그린 풍경처럼 가볍게 이쁘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 들판에서 나는 허기를 느꼈다. 허기라기보다 초록으로 여리게 파릇하게 자란 밀밭을 보며 소를 먹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엔 소를 키웠고 쇠 풀을 뜯어 다 쟁여 놓는 건 거의 나와 형의 일이었다. 당시엔 동네에 집집마다 한 두 마리의 소를 다 키울 때라 쇠 꼴을 한 경운기 뜯으려면 마을을 한참을 벗어나야 했다.


그 밀밭 근처에 고흐의 무덤이 있다. 그의 후원자이고 동생인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는 무덤은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다. 두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듯 그리고 슬픔은 덩굴처럼 끝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밀 밭 근처에 그의 묘지를 둘러보고, 영화 <러빙 빈센트>의 OST <Starry Starry Night>를 들으며 베르사유로 길을 나선다.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당신의 팔레트는 파랑과 회색으로 물드네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어느 여름날을 마주하고 있지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까지 발견해 줄 것 같은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언덕 위 그림자들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당신은 또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해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산들바람과 겨울의 냉기마저도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당신의 캔버스엔 색으로 담기죠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만이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래서 당신이 얼마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They did not know how 심지어 어떻게 해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어요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 이제는 그들도 듣겠죠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입구부터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된다. 궁전의 예매시간이 4시 30분이라 스타벅스를 찾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파리는 다른 곳보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베르사유 궁전 앞에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보며 한국어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영어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궁내 시설에서 본 영어라고는 “만지지 마세요”와 ‘EXIT’ 정도였다. 5유로를 주고 한국어 지원이 되는 오디오 기기를 빌렸다. 알아야 보이는 데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별로 없다. 모든 게 크다. 여왕의 침실조차도 아늑하고 우아한 느낌보다는 어색하게 크고 웅장하기만 하다. 왕자들의 방에 많은 책과 지구본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얼마나 넓고 할 일이 많은지를 가르쳤겠지라고 생각하며 방을 지나왔다. 거울의 방은 너무 유명해서 그리고 너무 크고 화려해서 특별한 설명 없이도 발 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당시는 유리를 가공하는 기술을 베네치아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베네치아의 기술자를 몰래 데려와 유리의 방을 만들고 제일 먼저 베네치아 대사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는 얘기는 비밀과 반전이 있어 흥미로웠다.



오는 길에 가이드에게 루이 14세와 그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건 당시에는 왕의 생활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는데 삶은 계란을 우아하게 먹는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과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루이 14세는 목욕을 단 세 번을 했다고, 당시는 목욕을 하면 질병으로부터 약해진다고 믿어서 잘 안 씻었는데 덕분에 향수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파리는 추웠다. 그리고, 변덕스러웠다. 햇볕이 쨍하게 났다가 어는 순간 우박이 내린다. 옷가지들을 대부분을 반팔 티셔츠와 바람막이 같은 얇은 외투와 박물관을 관람할 때 입을 재킷 한 벌을 가지고 왔다. 왜 따듯하거나 더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마 차량 렌트 할 때 에어컨이 되는지 꼭 확인하라는 메시지를 많이 본 데다 앞으로 가게 될 포르투갈이나 남프랑스 니스와 이탈리아가 지중해에 접해 있는 곳이라 추위는 없을 거라는 확증편향이 동작했던 것 같다. 유니클로 매장에서 에어 패딩을 하나 샀다.


저녁식사는 서울에서 블로거들이 추천한 프랑스 음식점으로 정했다. 나는 무릎 담요를 하고 새로 산 패딩을 입고 야외에 자리 잡았다. 스테이크와 연어, 닭고기 요리를 시키고 빠질 수 없는 맥주도 주문했다. 빵과 맥주는 먼저 나온다. 요리는 나오는 데 더디다. 앞 테이블의 두 젊은 여성은 커피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더 끊임없이 연초와 전자담배를 번갈아 가며 피운다. 연초를 너무 맛있게 피울 때는 한 대 얻어 피우고 싶어졌다. 파리는 담배 피우는 것에 자유롭고 다들 눈치를 보지 않고 피운다. 거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담배를 피우며 지나는 여성은 멋있기까지 했다.


원준이에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은데 끊은 지 4달밖에 안 돼서 참는다고 했더니, 해외여행 오면 시간이 멈춘다고 했나 제외된다고 했나 하며 유혹인지 용기인지 자기들 또래의 로직을 알려줬다.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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