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지내야지 했지만 넷플릭스는 멀리 했어야 했다. 며칠 전 우연히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느라 이틀 연속 새벽에 잠들고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청률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한국에 투자도 줄인다는데.
서울의 동료와 30분 정도 통화를 했다. 회사 상황이 이래저래 복잡하다고 한다. 주로 리더십, 이슈 해결,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얘기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나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숙소 근처에서 브런치를 하고, ‘상벤투역’까지 30분을 걸어 500번 버스를 탔다. 버스의 2층 맨 앞쪽에 앉았다. 불과 2미터 정도 더 높은데 전혀 다른 느낌의 승차감이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다. 20분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대서양이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세상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확인하려고 서쪽으로 계속 걸어왔다면 나의 발길은 여기에서 멈춘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늘에 앉아 있으니 서늘하기까지 하다. 복작거렸던 시내 관광지와 달리 한산하다. 좁은 해변에는 드문드문 일광욕을 즐기며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다. 개중에는 누드 해변도 아닌데 상의를 다 벗고 거리낌 없이 일광욕을 즐기는 여인들도 있다. 포르투의 해안은 파도가 부드러워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곳이 아닌지 서퍼도 없지만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요란하다. 바다의 파도는 일정치가 않다. 일정한 리듬으로 출렁거리는가 싶다가 어는 순간 파고가 높아졌다가 바위에 부딪치며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해변 옆으로 한참을 걷다 하얀 파라솔이 있는 카페에 들어왔다. 익숙한 이름이라 다시 보니 ‘피자헛’이다. 맥주 한 잔을 시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큰 무역선들이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더니 얼마 뒤에 보면 저 멀리 아득하게 작은 점으로 사라져 간다. 파라솔 아래 한 참 앉아 있으니 춥다. 이게 지중해날씨라는 거군.
파두공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어제 갔었던 ‘모루공원’에서 저녁 무렵의 조금 순해진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있을 요량으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갈 때는 이십 분 밖에 안 걸렸는데 돌아오는 길은 1시간이 더 걸렸다.
동루이스 다리로 연결된 강 너머에는 많은 와이너리가 있다. 포르투갈 내륙의 골짜기에서 생산된 와인이 이곳 와이너리에서 숙성되고 ‘도루강’ 하구를 통해 영국으로 실려갔다. 지금도 강변에는 상류에서 와인을 실어 나르던 낡은 배들이 관광용으로 떠 있다.
여러 와이너리 중 ‘CALEM’이라는 찾았다. 와이너리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시음과 파두공연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숙성 정도에 따라 와인의 종류와 색이 달라지는데 레드 와인이 붉을수록 젊은 와인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포트와인이 독한 건 옛날에는 저장방식이 발달하지 않아서 와인을 수출하기 위해 도수를 올리기 위해 발효하는 중에 브랜디를 넣어 만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와이너리에서 제공하는 와인 두 잔을 마시며 파두공연을 봤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는 운명을 뜻한다고 하는데,
운명의 감수, 체념, 슬픔 등을 그 음악에 담는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작은 체구. 하얗고 예쁜 얼굴. 노란 머리에 검정 드레스, 약간 허스키 한 목소리가 어떤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선율과 어울리는 창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도루강도 협주의 참여자인 것 같다.
아마 가수의 목의 떨림 때문일 수도 있고 멜로디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찌 들으면 우리의 트롯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한 번 불러 볼까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다.
숙소에 오는 길에 동루이스 다리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아름답다. 이제 아이폰 카메라보다는 마음속에 그 풍경을 온전히 담으려 한 참을 바라보았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 숙소까지는 40분 정도의 거리다. 길을 정하지 않고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거리의 연주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더니 10분 정도 더 걸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파두’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아밀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가 1980년 초에 방영했던 ‘사랑과 야망’에서 여주인공의 테마곡이었다는데 들어도 기억이 안 난다. 오히려 같은 가수가 부른 ‘어두운 숙명’이라는 곡이 아주 귀에 익다. 가사가 궁금해 찾아보니 그 끝이 어마어마하다.
‘네가 나에게 준 얼어붙은 독한 고독은 삶도 죽음도 없을 듯이 차갑기만 하구나. 네가 잘 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운명을 따라 차라리 미쳐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구나’라니…
포르투 사람의 체념은 이런 것인가.
‘파두’ 음악을 검색하다 보니 ‘헤어질 결심’의 OST인 정훈희 씨와 송창식 씨가 부른 ‘안개’가 이어 추천된다. 너무 멋진 곡이다. '안개'를 세 번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