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구 May 19. 2023

DAY13. 도루강의 석양

모루공원에서 본 석양

아침은 Louisa여사가 준 에그타르트와 오렌지 주스로 간단히 하고 도심 투어 미팅 장소로 나섰다. 마침 모임장소 근처에 ‘카르모 성당’이 있어 내부까지 둘러볼 요량으로 한 시간 일찍 나갔다.


‘카르모 성당’과 ‘카르멜리타스 성당’은 비슷한 높이와 규모로 나란히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르모 성당’이 18세기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건물이라면 ‘카르멜리타스 성당’은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상대적으로 밋밋한 외관이다. 그렇지만 두 성당 모두 내부는 금장의 재단과 벽면이 화려하다.


‘카르모 성당’의 벽은 아름다운 아줄레쥬로 장식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사진 스폿이다. 두 성당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좁은 집’을 끼고 있다. 교회법상 두 성당이 나란히 있을 수 없어서였다고도 하고, 신부님과 수녀님 간의 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도 한다. ‘까르모 성당’은 평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문을 살짝 여니 몇 명이 기도를 하고 있다. 나도 조용히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고 묵상을 했다.

카르모성당(우)와 카리멜리타스성당(좌)
카르모 성당의 아줄레쥬로 장식된 외벽


다니다 보니 포르투에는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마을마다 있는 동네 성당은 제쳐 두고도 시내의 높은 곳에 위치해 어디서도 잘 보이는 바로크 양식의 멋진 시계탑을 가진 ‘클레리구스 성당’, 남매 같은 ‘까르모 성당’과 그 바로 옆의 ‘카르멜리타스 성당’, 쇼핑거리에 아줄레쥬 타일 외관이 돋보이는 ‘일드폰수 성당’, 동루이스 다리 옆의 ‘포르투 대성당’ 등이 있다.




거리와 공원에 목련과 동백이 피어 있다. 목련은 그렇다 치고 동백꽃을 본다는 것이 신기해서 물으니 18세기쯤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성당에서 ‘상벤투역’까지 이어지는 길에 <해리포터> 작가 ‘조앤 K. 롤링’에게 영감을 줬다는 넬루서점, 마제스틱 카페를 지나왔다. 넬루서점은 줄이 너무 길어 들어가지는 않고 유명한 붉은 나선형 계단을 멀리서 보기만 했다. 포르투는 조앤롤링 덕에 먹고 산다는데, 정작 그녀는 포르투에서 영감 받은 게 별로 없다고 해서 포르투갈의 공분을 샀다고. 


포르투의 굵직한 사건들을 아줄레쥬로 표현하여 역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상벤투역’을 지나 도루강변에 도착했다. 이곳은 동루이스 다리에서 서쪽 강변으로 길게 늘어선 카페와 다양한 버스킹이 이루어지는 관광 명소이다.


오전 투어를 마치고 같이 투어를 했던 퇴직하신 영어선생님과 포르투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자기를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소개한 또 다른 젊은 친구와 같이 점심을 했다. 해물밥과 문어요리와 파스타를 시켜 한국식으로 나눠 먹으며 작은 와인 세 병을 마셨다.




와인으로 얼큰해져 숙소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났다. 석양이 보고 싶었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모루정원’은 저녁이면 석양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해는 8시쯤에 진다는 데 6시도 안 되어 공원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햇볕을 피해 나무 뒤 그늘에 있었는데 7시가 지나며 해가 낮게 드리우고 순해지며 내 몸으로 바로 비추는 햇살이 따듯하게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에 석양을 보러 온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활기가 가득하고 평화롭다.


버스킹 연주자가 나타났다. 기타 반주와 함께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익숙한 멜로디의 곡들이 계속 들린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자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던 젊은 처자 한 명이 바로 춤을 춘다. 대륙의 동쪽 끝에서 온 나는 서쪽 끝의 젊은 친구들과 이 석양 아래에서 음악으로 정서가 공유되고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하는 옆의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은 음악을 듣는 것 같지는 않다. 어디든 어린 친구들의 놀이는 경쾌하다. 저 친구들과 연대를 운운하기에는 갭이 커 보인다.

모루공원에서 석양을 기다리며


저녁은 포르투의 전통음식인 소 내장과 콩과 양배추 등을 넣고 푹 끓인 내장탕을 먹어 볼 생각이다. 이름도 어렵다. 아침에 투어를 도와줬던 가이드에게 문자를 보내 ‘트라파스 아 모다 두 포르투’를 하는 식당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몇 개의 리스트를 보내준다. 그중에 숙소 가는 길에 있는 한 곳을 정해서 갔다. 몸이 허해지고 기력이 부친다 싶을 때 사당역 근처의 ‘진지방 순대국’이나 남태령 고개의 ‘원주 추어탕’을 한 그릇 먹고 기력을 찾곤 했다.


내장 ‘탕’이라고 하기엔 자작하고, 카레처럼 밥과 함께 먹는 스타일이다. 웨이터가 쟁반 위에 가져온 밥을 펼치고 밥을 바깥쪽으로 밀고 가운데 공간을 만든 뒤 트레파스를 몇 국자 올려서 준다. 소 양은 부드럽고 냄새도 없다. 내 입에 조금 짜긴 했지만 실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다. 고추장을 함께 비벼 먹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후추를 달라고 해서 살짝 뿌려 먹었다.


하루를 꽉 채운 기분이다.



이전 12화 DAY12. 포르투의 히든 플레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