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대접받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의 기억
다음날 일어나니 목이 칼칼하다. 어제 후배가 보낸 “의외로 탈이 잘 나시니 건강 유의하시기 바란다는” 안부 인사가 생각난다. 비타민과 아이시안 아르기닌 등 가지고 온 건강보조식품을 종류별로 하나씩 다 챙겨 먹었다.
포르투로 가는 기차는 10시 9분이다. 유럽의 고속열차를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낡은 기차다. 속도는 종잡을 수가 없다. 100 km/h에서 최고 속도 220 km/h로 달리는 데 아마 기찻길의 상태에 따라 다른 듯한데 이백 키로 가까이 속도를 낼 때는 기차가 많이 흔들린다. 탈선하지는 않겠지. 천천히 가다 빨리 가다 그 기준은 모르겠다. ‘Free Wifi’ 표식도 있고 신호도 잡히는 데 연결이 안 된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Not working, sorry”라며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내 창 쪽으로 햇볕이 들어 차양막을 내리고 있다가 2시간을 몰두하며 여행기를 정리하다 고개를 들어 반대쪽 창을 보니 대서양이 바로 옆이다.
바다와 자연과 드문드문 몇 채식 모여 있는 빨간 지붕의 집들이 평화롭다. 잘 왔다. 그래, 이런 곳에 머물고 싶었다.
아고다에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Uba Heritage and Wine>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조용한 집이다. 체크인을 할 때 집주인 Louisa 여사-아주머니보다 이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가 웰컴 와인을 한 잔 권했다. 달콤하고 강한 화이트 포투 와인이다. 여사님도 와인을 한 잔 따라 앉아 숙소의 역사로 시작해 포르투의 안내지도를 펼치더니 가볼 곳과 추천 식당들을 지도에 표시해 가며 정성스레 설명을 해 주신다. 1864년에 Louisa여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지어 지금은 내부 수리를 하고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묵을 3층까지 좁은 계단을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다. 열쇠 구멍에 묵직한 열쇠를 넣고 두 바퀴 왼쪽으로 돌리니 문이 열린다. 거실은 작은 원탁 테이블과 편히 않기엔 조금 커 보이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창 밖으로는 포도가 심어져 있는 작은 정원이 보인다.
균형이 맞지 않아 덜렁거리는 낡은 원목의 원탁 위에는 와인 한 병과 두 개의 와인 잔이 하얀 레이스의 천 위에 올려져 있다. 침실은 다락방으로 원형 나무 계단으로 연결된 처마 아래 야트막한 공간이다. 퀸사이즈의 침대에 하얀 침대 시트와 베개가 가지런하고 그 옆의 나무의자, 그리고 100년은 더 돼 보이는 나무로 된 여행용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숙소까지 따라온 Louisa여사는 마저 몇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고 내려가셨다. 귀한 손님 대접을 받은 기분이다.
점심은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먹었다. 역시 밥의 힘인가. 간단한 식사지만 저녁이 다 되도록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숙소를 나서는데 현관 앞의 장식 테이블 위에 초코볼 접시가 놓여 있었다. 오가며 한 알씩 먹었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도심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리스본처럼 바닥이 돌로 모자이크 되어 있다. 사각형 모양의 검은 돌과 흰색 돌의 편편한 부분을 위쪽으로 모자이크 했다. 유럽 어디도 울퉁불퉁한 돌 길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모자이크 한 보행길은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부터 이런 길이었는지, 지금의 길은 언제쯤 이렇게 작은 돌 하나하나 놓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지만 한글로 된 정보로는 알 수가 없었다.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일요일 저녁이라 문 닫은 곳이 많았다. 세 곳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길 거쳐 ‘Cafe Ceuta’을 선택했다. 다른 곳보다 손님이 적어 미심쩍었지만 기타 반주에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보고 눌러앉았다. 학센을 연상하며 ‘pork knee’로 시작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와인 한 잔을 같이 주문했다.
상상했던 학센과는 조금 다른 비주얼이다. 아마 양념한 돼지 무릎을 오븐에 30분 이상 구운 듯 쟁반 아래는 육즙과 기름이 잘박하다. 나이프에 힘을 줄 필요가 없이 부드러워 나이프를 지지대로 포크로 껍질 부분과 살점을 여며서 얇게 쓴 오이 피클과 함께 한 입 먹었다. 부드러운 게 껍질은 미끈하고 살은 닭다리처럼 부드럽다. 스푼을 준 걸로 보아 국물도 먹는 건가 싶어 바닥에 있는 국물을 맛봤다. 느끼하지 않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생각나는 얼굴이 많다. 결국 와인을 한 잔을 더 시켰다.
서빙했던 직원이 친절해서 팁을 줄까 했는데 계산서를 가져다주며 구글에 리뷰를 요청하는 걸로 봐서 사장의 딸이 아닐까 싶어 팁 대신 구글에 사진과 평가를 업로드했다. 며칠 전 구글에서 내가 올린 사진의 조회수가 한 달 동안 5000회가 되었다며 메시지가 왔다. 팁보다 더한 보상을 준 것 같아 뿌듯하다.
돌아오는 골목길 조명에 반사된 바닥의 타일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