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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May 19. 2023

DAY12. 포르투의 히든 플레이스

새벽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메이커’를 보고 거의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내가 밤을 지내는 동안 서울은 바쁜 낮 시간을 보낸다. 밤 새 온 메시지를 읽는다. 뉴스 브리핑, 증시 뉴스와 업계 상황, 신부님의 아침 기도, 그리고 집요한 광고들, 안 읽은 메시지 목록을 쓱 보면서 ‘사람’이 보낸 메시지부터 읽는다.


예전 보스의 문자를 제일 먼저 읽었다. 영국과 터키에 오래 주재하신 경험으로 유럽에 대해 “솔직한 제 느낌은 죽은 시인의 사회와 문명은… 쇄락해 가는 문화 도시, 멀리서 보면 역사의 향기도 많아 보고 들을 것은 많으나 미래는?” 그러면서도 말미에는 선입관 없이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역사와 문화의 향취를 흠뻑 느끼고 오라고 하신다. 선입관 하나 빡 심어 놓으시고.^^


아침 겸 점심은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동네 식당에서 구글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주문했다. 생맥주 한 잔과 같이 하니 6.6유로. 점점 검소해지고 있다. 오늘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포르투의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포르투의 속살 같은 곳들을 찾아가는 도보 투어다. 원래 계획은 도심지 투어를 먼저 하고 ‘히든 플레이스’를 투어 하는 순이었으나 가이드 일정 때문에 순서가 바뀌었다.


가이드를 만나기로 한 포르투 대학 앞 사자분수에는 검은색 망토 교복을 입은 포르투 여대학생 두 명이 빵 상자를 들고 싱글맘을 위한 기금 모금을 하고 있다. 빵 한 조각을 집고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주고는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투어는 ‘히든 플레이스’라는 이름처럼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관광객들이 별로 갈 것 같지 않은 골목들을 다녔다. 7년을 포르투에 살았다는 가이드가 인상 깊었던 곳, 부티크 상점, 현지인들이 좋아한다는 브런치 골목,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예술 거리를 걷고 한 두 갤러리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타깃고객 설정이 잘 못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포르투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 사람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은데 며칠 머물다 갈 사람에게는 맞을까? 어쨌든 보통 사람들은 은밀한 걸 좋아하니까 '히든'이라는 프로그램 이름 덕분에 사람들은 계속 찾을 것 같기도 하다. 


예술거리 초입 벽면에 돈키호테 그림이 있다. 보통 벽에 그리는 그림과 낙서는 바로 지우는 데 이 그림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그림이라고.


내 또래의 아저씨, 대구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와 같이 왔다는 30대 전후의 여성 둘, 대전에서 연극영화와 연출을 공부하는 있다는 여대생, 그리고 한 달째 여행 중이라는 또 다른 여대생 한 명과 같이 걸었다. 그들의 사진 찍기를 유심히 보니 사진 포즈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아저씨 포즈, 젊은 친구들의 포즈, 특히 젊은 친구들은 얌전히 있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양한 포즈들을 연출한다. 몇 개의 패턴이 있어 카메라 렌즈가 향하면 어떤 포즈를 취할지 미리 상상이 된다.


혼자 온 아저씨는 리스본에서도 본 사람이다. 처음에 못 알아봤다가 배낭에서 FJ 점퍼를 꺼내 입는데 생각이 났다. 호시우 광장에서 FJ 점퍼와 ANEW모자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지나가는 아저씨를 보며 나와 같은 조합이라 취향과 개성의 시대에 한국 아저씨들의 선택 폭이 좁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었다. 오늘 그 옷을 집었다가 다른 옷으로 바꿔 입고 나왔는데 그랬다면 한국에서 온 두 아저씨가 같은 옷에 같은 브랜드의 모자와 신발을 한 웃긴 장면이 연출될 뻔했다.


이국적인 풍경을 기대했을 수 있는 관광객을 감안해 코스의 뒷부분에 전망 좋은, 예전에 ‘수정궁전’이었다 지금은 아레나가 있는 ‘수정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모루강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구도심과 다리 건너의 와이너리들이 모여 있는 언덕이 한눈에 조망된다.


리스본의 ‘타누스강’이 대륙에서 바다로 진출하는 거대한 출발 같은 느낌이었다면, 포르투를 끼고도는 ‘모루강’은 대륙의 안쪽 골짜기에서 포도주와 함께 그들의 애환이며 숨결이 흘러와 강변의 대폿집에 쌓이는 종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루강’ 하구의 항구도 영국으로 실어내는 포트 와인의 출발지였다고.



코스의 마지막은 가이드의 함께 온 현지 파트너가 어릴 때부터 단골이었다는 카페에서 비뉴 지방에서 생산된 어린 청포도로 만든 와인인 비뉴 베르드와 소시지를 구워서 나눠 먹었다. 일행과 헤어질 때 독신이며 나랑 취향이 같은(?) 그 아저씨에게 와인 한 잔 제안하려다 그만뒀다. 여긴 서울이 아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서 닭다리구이와 라면과 물과 맥주를 좀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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