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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Jun 08. 2023

나의 체크아웃 - 마지막 출근

퇴임임원의 하루

임원의 퇴임은 쓸쓸하다. 그때를 스스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어서일까. 어떤 경우는 주위 사람들은 이번에 퇴임될 거라는 걸 예상하는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투혼을 불태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 임원 인사가 있기 하루 이틀 전에 퇴임 통보를 받으면 그날이 그들을 회사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경우가 많다. 대개 퇴임 임원들은 당황하고 황당해하다가 억울해한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알음알음 연락해 평소 친분이 있었던 지인과의 뒤늦은 작별 회식은 남은 사람들이 베푸는 성의다.


퇴임 임원들의 사연은 가까이서 보면 다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대동소이하다. 경영 환경이 바뀌었다거나 회사의 전략상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쏠려 자원을 더 이상 투하할 수 없을 때, 맡고 있는 사업의 실적이 악화되거나 부진이 이어질 때, 나이가 많아서, 할 만큼 해서,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서, 부정이 있어서, 또는 대주주의 눈 밖에 나서… 불행한 가정은 구구절절 사연이 많지만 또 달리 보면 그 이유가 단순한 것처럼 임원들의 퇴임이유도 단순하다. 이 모든 이유는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원은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다. 오너가 아닌 이상 그저 자기의 시간을 다 하고 지나갈 뿐이다. 아무리 좋은 5성급 호텔이어도 때가 되면 체크아웃해야 하는 것처럼 영원히 머물 수가 없다.




지난 늦가을, 나는 출장으로 도쿄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사실장으로부터 언제 올 수 있는지 전화가 왔다. 인사 시즌이었고 나의 거취에 대한 논의를 해오던 터라 결정이 났구나를 직감하며 다음날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회사로 갔다. 인사실장은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애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도쿄의 긴자 거리에서 얘기를 나눴을 때 비해 일주일 사이 꺼칠해진 인사실장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대표이사와 미팅을 했다. 그분도 떠나게 되었기에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홀가분했다. 누구나 자기의 시간이 있는 법이다. 기세가 다 한 사람이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건 그저 추할 뿐이다. 이런저런 얘기와 소문에 일말의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보낸 일 년 동안 나를 억눌렀던 무기력함과 애써 누르고 있던 복잡다단한 상념과 감정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경계에 서서 보낸 시간이 고단했다.


저녁에 아내와 와인을 마시며 축하를 했다. 두 아들에게도 신상의 변화에 대해 알렸다. 잘렸다고 할까? 그만뒀다고 할까? 어떤 표현을 쓸까 고민하다 퇴임이라고 얘기를 했다. 나의 소임을 다했기에 퇴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고맙게도 자문역의 유예기간을 줬기에 생활에 불편함을 없을 테니 너무 염려 말라고 했더니 둘째가 대학 학자금은 문제없냐고 질문해서 온 식구들이 함께 웃었다.


주말에 직장생활의 멘토셨던 분과 판교 운중천을 걸었다. 그분은 나를 보자 '회사에서 잘린 사람이 얼굴이 너무 좋구먼'이라며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당연하다. 퇴임 얘기를 듣고 바버샵에서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피부과에서 보톡스도 몇 방 맞았다.


월요일 아침, 임원 인사발령일이다. 퇴임발령은 따로 없다. 물론 출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면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양복과 타이를 하고 출근준비를 했다. 마지막 출근이라 차를 두고 리무진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 싶어 앱으로 신청을 하니 미리 예약을 해야 가능했다. 마음을 바꿔 처음 출근할 때를 생각하며 전철을 탔다. 전철을 내려 버스를 갈아 타고 또 조금 걸었다. 가는 길이 가볍다. 아, 이 철없음을 어쩌면 좋을지.


평소의 루틴대로 1층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사무실로 갔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가져갈 짐들을 정리했다. 포장이사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총무팀에게 박스를 집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화분들은 옆 방의 남은 임원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온전히 가벼워진 것 같다. 사무실에 책상과 빈 책장, 원탁 테이블이 덩그러니 남았다. 간간이 찾아오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3시에 인사발령이 났다. 좀 있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팀에서 찾아왔다. 퇴직금이며 이런저런 필요한 절차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니 퇴사가 공식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나의 전부인양 붙들어 온 시간과 공간이었는데 사인 몇 개로 끝을 맺었다. 이렇게 쉽구나. 회사를 잠시 머무르는 호텔 같은 곳이라는 비유를 종종 하곤 했는데 회사를 떠나는 절차가 싱거울 만큼 간단했다.


진심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IT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 경력전환을 위해 두 번째 입사한 회사였다. 10년은 다니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18년을 다녔다. 2005년 전략기획팀으로 입사해 IT 경험자라는 이유로 ERP추진팀장을 했고 이후에 이름만 멋있는 여러 팀의 팀장을 했다. 인터넷마케팅팀, 상품전략팀, 인사이트마케팅팀, 운영혁신팀, 전략기획팀, 경영관리팀, 나의 경험으로 팀 이름에 영어가 들어가고 멋있으면 실속이 없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대개는 ‘어떻게’를 고민하는데 나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팀 이름은 두 자가 좋다. 인사, 감사, 재무, 총무… 무엇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팀이다.


운 좋게 일찍 임원이 되었다. 계열사 몇 곳의 CFO를 거쳐 코스닥 상장사에 그 분야에서 1등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소위 말하는 진골, 성골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뚜렷한 업적이 있거나 나이로 여문 것도 아니어서 나는 행운이라고 밖에 나의 출세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그 행운의 실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건 나중에 쓸 예정이다.)


나도 이제 공식적으로 퇴임을 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건물을 돌며 교류가 있었던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친했던 동료 몇 명과 한남동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밴을 불러서 집으로 왔다.




전도서의 몇 구절이 생각났다.


A generation goes, and a generation comes, but the earth remains forever. What has been is what will be, and what has been done is what will be done; and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For when dreams increase, empty words grow many: but do you fear God.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오지만 대지는 영원하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앞으로도 하게 될 것이다. 꿈이 많으면 헛됨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오직 신만 두려워해라.)


내가 두려워해야 할 그 ‘신’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내가 이제 두려워하고 집중해야 할 본질은 나의 주체성을 되찾고 실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회사의 틀 안에서 존재가 규정되고 의미를 찾아왔다면 이제 회사를 떠나 온전히 나를 통해 현재를 개척해 가야 한다. 미래의 결과를 예단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단지 현재에 온몸을 풍덩 던지는 것이 실존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떠남은 그래도 약간의 설렘이 있다.



[마지막 출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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