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단 한 명의 고모가 있다.
어려서는 고모를 참 싫어했다. 지금도 그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모는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사셨는데, 어쩌다 한 번 놀러가면 잠깐만 반겨줄 뿐 빨리가라며 짜증을 내는 분이었다.
혼자 사시면서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드시는지, 고사리 무침 하나를 하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분이었다.
고모가 사는 집은 아주 깊은 산 골짜기여서 슈퍼 하나가 없었다. 밤이 되면 하늘엔 은하수가 내 눈 앞에 펼쳐진 양 수많은 별들이 총총 떠있었는데, 나는 그게 퍽 좋았다. 시기를 잘 맞춰가면 반딧불이도 볼 수 있었는데 평생 도시에서 산 내가 보기에는 그 광경이 꼭 요정의 집 같았다.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앞 개천에서 흐르는 물 소리, 건넛집에서 키우는 소가 내는 소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가 전부였다.
아침이 되면 차갑게 서리가 내려 온 마을이 안개에 잠겼다. 안개 낀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그 풍경이 종종 생각난다. 안개 속에서 고모네 집 뒤에 있는 텃밭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캐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안개 속에서 세수대야에 얼음장같이 찬 물을 받아 세수를 할 때면 몽롱하게 남아있던 잠 기운 마저 파드득 달아났는데, 어린 나는 그것 역시도 꽤나 재미있었다.
고모의 텃밭은 항상 시들어 있었고, 낡고 오래된 집 역시 제대로 보수를 하지 않아 동화 속에 나오는 아주 아주 오래된 집같았다. 아빠와 아빠의 가족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이었으니 아주 오래된 집이 맞았다.
고모는 항상 화가 많았고 우리 엄마에게 이유없는 짜증을 많이 냈다. 내 기억 속 고모는 항상 ‘특이한’ 사람이었고, 짜증 가득한 사람이었다. 아빠 역시도 고모에 대해서는 항상 “우리 누나는 유별나고 못됐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래서 정말 고모가 특이하고 못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고모 댁에 간 적도 없고 왕래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모는 내 기억속에서 잊혀졌고, 새벽이면 찬 서리가 내리던 밤이면 반딧불이와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던 그 산 속의 집 마저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몇 년 전인가, 고모가 그 낡고 아름다운 집을 팔고 요양원에 제 발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60대밖에 안됐고 지병도 없는데 왜 요양원을 가셨지? 싶었는데 엄마가 말해주기를 고모는 어릴 적부터 간질을 앓으셨다고 했다.
고모가 어렸던 그 시절 병원에서는 중년의 나이를 넘기지 못하고 일찍 죽을거라고 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 때부터 고모가 변했다고 했다. 원래 고모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조금 까칠하기는 했지만 유별나게 못 된 사람은 아니었다고.
나는 고모의 삶을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단편적인 모습과 사건들이 종종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리 긍정적인 모습들은 아니었다.
작년엔가? 내가 도스도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었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엄마가 처음 고모를 만나던 날 고모가 그 책을 읽고 계셨다고 했다. 아빠가 어릴때부터 나한테 너는 고모랑 아주 똑같다며 욕 아닌 욕을 했었는데, 어린 시절 내가 느끼기에는 아주 나쁜 욕처럼 들렸었다. 아빠는 맨날 고모에 대해 나쁜 말만 했었으니까.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기 전 고모와 함께 바에 간 적이 있었는데, 고모가 플로어 무대에 나가 듣기 좋은 재즈를 부르며 가볍게 춤을 추던 모습이 종종 생각난다고 했다. 엄마는 고모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고모의 아름다움과 많은 재주들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엄마 역시 몸이 약해 질병때문에 모든 것을 놓고 싶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듣는 고모는 참 특이하지만 매력있는 사람이었다.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어두운 곳에 앉아 담배를 피는 걸 즐기는 분이었고, 사람 사이에 섞여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고모가 까라마조프를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같은 병을 앓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고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주 많던 어린 소녀가 혼자 멀쩡한 팔다리로 요양원에 들어가기까지 고모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고모가 그 낡은 집을 팔았다는 소식을 듣고 꼭 돈을 모아 다시 그 집을 사겠다는 다짐을 했다. 꼭 다시 사고 싶은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서 많은 걸 포기하고 어두운 방 안에 앉아 괴로운 나날이 계속될 때면 고모가 생각난다. 애틋하지도, 보고싶지도 않은 고모지만 아빠가 꼭 너는 고모랑 똑같다고 하던 말들이 생각나서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