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발자국 05
영국의 신경과학자 볼프람 슐츠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원숭이를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혀놓고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도형을 제시한다. 원숭이가 마우스를 직접 움직여 도형들을 클릭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그중 특정 도형을 클릭하면 오렌지주스 다섯 방울을 입 속으로 떨어트려 주는 실험이다.
원숭이는 여러 도형을 클릭해 보다가 우연히 노란색 삼각형 도형을 클릭하면 오렌지주스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이때 흔히 '쾌락의 중추'라 알려진 측좌핵의 신경세포 활동이 활발하게 증가하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이내 학습이 된 원숭이는 실험이 시작되자마자 노란색 삼각형을 클릭하고는 오렌지주스가 제공되길 기다린다. 원숭이의 기다림과 기대감은 쾌락으로 작동한다. 기다리는 동안 측좌핵의 신경세포는 난리가 난다. 그런데 정작 오렌지주스가 나와서 먹는 동안에는 그다지 즐겁워 하지 않는다.
쾌락이란 그런 것이다. 기대했던 것이 나올 땐 기쁘지 않게 마련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나올 때, 기대 이상의 무언가가 나올 때 기쁨이 된다.
더 극적인 상황 연출을 위하여 이번에는 원숭이가 노란색 삼각형을 클릭했는데 오렌지주스를 두 방울만 제공했다. 원숭이는 기대했던 것보다 적게 나오는 상황에서 실망감이라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런데 만약 오렌지주스가 아니라 전기충격이라는 부정적인 보상을 제공하면 어떻게 될까?
전기충격이 올 거라는 사실을 모를 때에는 오히려 전기충격을 견딜 만하다. 놀랍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지나가는 고통일 뿐이다. 그런데 30초 후에 전기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30초는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이 된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결국, 우리가 미래를 알게 된다면 모르는 상황보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