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삥을 뜯겨 본 게 언제였던가. 국민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집앞 골목을 지나는데 덩치 큰 형들이 "야, 일루 와 봐" 하고 불렀다. 긴장해서 갔더니 돈 있으면 백원만 달라고 했다. 줬다. 우리집이 보이는 곳이었다. 기억도 아련한 첫 삥의 추억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삥의 뜻이 나와 있지 않다. 전문 용어라서 그런가 보다. 네이버에서 찾아 보니 '상대방을 협박하여 빼앗은 돈이나 물건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 있었다. 협박의 뜻은 '겁을 주어 남에게 어떤 일을 억지로 하도록 함' 이다.
삥 뜯는 형들은 돈을 안 주면 한대 때릴 거 같은 분위기를 잡는다. 어떤 형은 옆 눈길로 슬쩍 한번 쳐다 보고 나서 찍하고 침을 뱉는다. 다른 형은 주먹으로 괜히 담벼락을 쿵쿵 친다. 돈 있느냐는 말에 덜컥 겁이 나지만 그래도 그냥 뺏길 수는 없다. 용기를 내서 돈이 없다고 해 본다. 이럴 때 옆에 있던 또 다른 형이 먼 곳을 보면서 “뒤져서 나오면 십원에 한대씩이다” 라고 중얼거리면 순순히 있는 돈을 주게 된다.
청소년 시절의 삥뜯기에서 겁을 주는 방법은 때리지 않을테니 돈을 내라는 것이다. 즉, '무엇을 하지 않을테니 돈을 내라'는 것이 삥뜯기에서 협박의 메시지이다.
협박을 통해 돈을 받아 내는 것은 청소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엇을 하지 않을테니 돈을 내라'는 협박성 요구를 주변에서 자주 본다. '민원을 제기하지 않을테니 돈 내라', '기사를 쓰지 않을테니 돈 내라', '시끄럽게 하지 않을테니 돈 내라' 는 것이다. 십대들의 '때리지 않을테니 돈 내라'와 다를 것이 없다.
삥뜯기 당할 소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그건 삥뜯기를 정의로 포장하는 일이다. 삥뜯는 자가 진정 정의롭다면 상대방의 반응 살피지 말고 그냥 민원 넣거나 기사를 쓰거나 고발하면 된다.
우리 사회에는 사이비 언론이나 조폭 같이 삥뜯기를 사업 모델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있다. 사업이 횡행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정의롭지 않은 협박에 굴복하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낸다. 그들의 협박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의 경제적 손실과 마음 고생을 생각하면 돈 내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삥듣기가 사업성이 있는 이유는 한국인에게 삥뜯기 마인드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삥뜯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이럴 때 보인다. "승진했는데 밥 사라", "이번에 상 받았으니 한턱 내라", "로또 맞았다면서? 어려운 동생 좀 도와줘라" 하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경우이다. 이게 무슨 삥이냐고? 이 요청에는 '너 짠돌이고 정 없다고 어디 가서 얘기하지 않을테니 밥 사라 (또는 돈 내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밥 사고 술 사는 사람도 많은데 속 좁은 생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요청을 여러 사람에게 강하게 받아 보라. 슬슬 기분이 나빠지면서 머리 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죽어라고 일해서 승진한 거고 목숨 걸고 사업해서 돈 벌었는데 뭐 보태 준 거 있나?’, 하다 못해 ‘로또가 되었어도 내가 돈 내고 샀지 지가 사 줬나’ 같은 생각이다. 이게 진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돈을 벌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밥을 사고 술을 산다. 사람이 정이 없고 짜다는 말 듣기 싫으니까 기분 좋게 사는 척 하고 산다. 사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밥을 사는 진정으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중에 나도 밥 사라고 해서 얻어먹을 거니까 밥을 사는 거다. 누가 승진하거나 주식이 올라서 대박치면 나도 밥 사라고 할 거니까 산다. 밥 얻어먹는 건 즐거우니까.
인사철이 왔다. 승진한 동료에게 밥 사라는 이야기는 슬쩍 한 번만 하자. 기쁘고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은 지나가는 말로 밥 사라고 해도 진심으로 한턱내고 싶은 생각에 기쁘게 친구들을 불러 모으게 되어 있다.
정을 강요하면 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