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싫어하는 일은 무엇일까? 짐작할 것이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떠나보내기라고? 그냥 짜르거나 해고라고 하면 될 걸 왜?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말이라 돌려 말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는 해고, 해임 또는 퇴임이라고 하겠다.
CEO는 임직원, 그 중에서 임원을 해임하거나 퇴임시키는 일을 조금 더 힘들어 한다.
임원을 해임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정년퇴임을 제외하고 임원을 해임하는 첫째 상황은 책임질 일이 있을 때이다. 횡령이나 괴롭힘, 성희롱 같은 일은 물론 업무상 큰 사고를 냈거나 성과가 크게 낮을 때이다. 공장장 본인의 실수로 공장에 불이 났거나, 사업부장 혼자서 모든 물건을 만들고 판 것은 아니라고 해도 공장장이나 사업부장이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야 할 경우가 있다. 소위 관리 책임이다.
두 번째는 임원이 맡고 있는 업무의 현재 성과가 크게 나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이다. 임원의 역량이나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해외로 판매를 확대하기로 했는데 담당 임원이 영업 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기술자 출신이라고 하자. 회사 내 다른 자리로 옮겨 줄 수도 있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퇴임시키고 다른 사람을 임명한다.
임원을 해임하는 세 번째 상황은 임원의 리더십이 조직과 맞지 않거나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이다. 임원의 일하는 방법이나 구성원과 관계 맺는 방식이 조직문화나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구성원이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게 되어 조직이 잠재력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일이 생긴다. 이때 CEO는 리더인 임원을 교체함으로써 변화를 시도한다.
첫째 상황에서 CEO는 비교적 쉽게 해당 임원의 해임을 결정한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상황에서 해임을 결정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앞으로 높은 성과나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도 현재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CEO가 임원을 해임할 때 힘들어 하는 이유는 임원과 자신과의 관계 때문이다.
CEO는 가깝게 같이 일한 임원을 해임할 때 마음이 아프다. CEO와 임원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의 사이이기도 하지만 회사를 함께 경영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대표가 모든 일에 전문가일 수는 없으니 결국 생산, 영업, 개발의 모든 현장은 임원이 지킨다. 회사의 어려운 일에 대해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CEO이지만 그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임원이다. 임원을 해임하는 일은 사나흘이 멀다하고 마주 앉아 얼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 너랑 얘기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첫 직장에서 CEO까지 오른 대표의 경우에는 임원의 퇴임을 결정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조차하다. 대표는 대부분의 임원과 적어도 20년은 동료나 선후배 사이로 일했다. 사원, 대리 때부터 기쁘고 슬픈 일을 같이 겪어 온 선후배에게 이제 회사를 떠나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너무도 미안하다 못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임 통보를 받은 임원이 울먹이기도 한다. 언제인가는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일할 만큼 일했고 퇴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없이 상상해 보았어도 막상 해임 통보를 받으니 급작스럽기만 하다. 아내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애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어야 하는 건가, 수많은 생각에 먹먹하다.
퇴임을 통보한 CEO도 마음이 아프다. 같이 보낸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그가 퇴임하게 된 원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는 생각한다. ‘김 상무가 물러나는 건 결국 내 책임이 아닐까? 내가 그때 더 잔소리 하고 더 크게 호통 치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임원이 떠난 뒤에도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시라도 다른 곳에 취직했는지, 막둥이는 대학에 잘 갔는지, 큰애는 졸업해서 취업했는지 궁금하다. 명절 때 선물을 보내지만 직접 연락해 보기는 편치 않다. 친했던 다른 임원을 통해 소식을 듣는다. 어려운 상황에서 임원들을 많이 떠나보낸 회사의 대표는 퇴임임원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경영난에 빠진 일본항공의 회장을 맡아 대규모의 구조조정 끝에 2년 만에 회사를 살려냈다. 그는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 .’는 불교의 말씀을 인용하고는 한다.
임원 인사는 CEO의 일이다. 신규 임원을 선임하고 승진시키고 퇴임을 결정하는 것은 CEO가 하는 일이다. 누가 대신 해 주지 않는다. 힘든 의사결정을 피하고 싶고 불편한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면 결국 더 힘들고 불편한 일이 되어 돌아온다.
인사철이 다가오면 CEO는 ‘대선(大善)은 비정(非情)이다’ 라는 말의 뜻을 새기면서 ‘누구인가는 해야 할 일인데...’ 하고 한숨을 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