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의 시간

제3의 화양연화

by 박찬미

고소하면서도 알싸한 향이, 베란다 바닥에 낮게 내려앉는다. 엄나무 가시 묶음 사이로 툭 떨어진 들깨 꽃대 하나. 포천 밭에서 자생하던 그 야생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먹을 만큼 따다 상추와 쌈을 싸 먹던 날들. 하얀 꽃이 지면 꽃대를 세워 두었다가 씨를 털어 오던 소박한 계절이 거기 있었다.


지난해 남편은 엄나무를 베고, 나는 전정 가위로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자루에 담았다. 순은 나물로 무치고 가지는 차로 마시겠다며 욕심껏 챙겨온 보람이 베란다 구석에 남았다. 빗질을 멈추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냉이와 달래를 캐고, 두릅을 따느라 분주했던 시간. 남편은 여전히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어느덧 새 계절이 문턱을 넘고 있다.


엄나무를 버릴까, 망설이다가 다시 자루에 담았다. 남편과 나의 수고를 헛되이 두고 싶지 않아 가지만이라도 푹 끓여 마시기로 한다. 창고 선반 위에는 남편이 담근 술과 매실 항아리가 빼곡하다. 견출지에 적힌 연도와 재료는 세월에 씻겨 형체가 흐릿하다. 정리해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안방 베란다 창고는 오랫동안 닫혀 있어 습기가 가득했다. 설 연휴를 빌려 대청소를 시작했지만, 작업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발이 부어 사기 시작한 남편의 신발, 오래된 가전, 퇴직 후 배우던 드럼, 훈화 시간에 쓰던 마술 도구... 그와의 시간이 물건의 형상으로 쏟아져 나온다. 주인 잃은 물건이 쏟아져 나온 창고는 이제 공연이 끝난 뒤 적막만 감도는 시골 서커스의 천막처럼 쓸쓸하다. 한 번도 쓰지 못한 배드민턴 라켓 앞에서 결국 마음이 저린다. 이제 누구와 마주 보며 셔틀콕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내 삶의 절반이 뜯겨 나간 자리가 시리다.


스물여섯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알고 “곤니찌와”라고 인사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나라 전체가 들떠 있었고, 나 역시 관광의 시대를 꿈꾸며 대학원 관광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옥스퍼드에서 열린 경영세미나에 참석하며 유럽을 여행하던 시간, 젊음은 가능성 그 자체였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나의 첫 번째 화양연화(花樣年華)였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충만했기에.


두 번째 화양연화는 이십 년 전, 유러닝 연구학교 연구부장으로 일하던 때였다. 병실에 있는 아이들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였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 된 지금과 달리, 그때는 낯설고도 간절한 시도였다. 암 병동과 폐쇄 병동에서 만난 아이들이 또래처럼 학교에 가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했다. 전국에서 발표를 보러 온 교사들은 환우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적은 인원으로 연구학교를 운영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그 시간은 무엇보다 빛났다. 일에 대한 열정으로 피어나는 시절 또한 분명 화양연화일 것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은 기억을 지우는 기술 앞에서도 끝내 사랑의 순간만큼은 지우지 않으려 한다. 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남는 것이기애. 남편과의 삶이 늘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기루처럼 다시 잡을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 빛나 보인다.

발리에서 사 온 대나무 술병을 내려놓다 그만 매실 항아리 위로 떨어뜨렸다. 뚜껑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깨진 조각을 치우며 문득 깨닫는다. 삶이란 항아리 속 매실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 일과 같다는 것을. 그릇의 형태는 바뀌어도 고유의 맛과 향은 흩어지지 않는다. 기억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더 깊은 자리로 거처를 옮겨 앉을 뿐이다.


어제는 봄의 전령사라는 봄까치꽃을 찾아 고덕천을 걸었다. 양지바른 곳에 별사탕처럼 흩뿌려져 있을 그 꽃은 아직 기척이 없었지만, 머지않아 대지 곳곳에서 연약하고도 강인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화양연화는 결코 박제된 과거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꽃처럼 다시 열정을 다해 살겠노라 다짐하며 젖은 창고를 닦아내는 지금, 나의 시간은 항아리 속에서 다시금 향기롭게 익어 간다.

작가의 이전글마지막 지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