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의 복귀
임창용이 지난 금요일, 넥센과의 고척 원정경기에서 등판했다.
이날 임창용은 7개의 공을 뿌리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임창용은 작년 삼성 소속 당시 해외 원정도박으로 안지만, 윤성환과 같이 징계를 받았다.
임창용은 당시 자신이 잘못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시즌 중간 안지만, 윤성환은 등판했지만 임창용은 무거운 징계로 출전을 못하고 시즌 후 삼성을 떠났다.
이후 임창용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해외 원정도박을 주도한 선수를 누가 데려가겠는가?
이때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이 있었으니, 고향팀인 기아였다.
임창용은 인터뷰에서 "고향팀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했다.
임창용은 1995년 해태에서 데뷔를 했고 선발, 중간, 마무리를 했고 사이드암의 투구 모습으로 '뱀직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때 당시 감독이던 김응룡 감독은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며 임창용을 같이 데려갔고 그곳에서 별명은 '애니콜(과거 삼성전자의 휴대폰, 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마운드에 올랐기에 임창용은 '애니콜'로 불리기도 했다.)'이었다.
아무튼, 임창용은 역시 임창용이었다.
직구 최고속도가 149Km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임창용이 얼마나 뛰고 싶었는지를 증명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몸을 잘 만들고 올라온 임창용, 그를 향한 시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긍정적인 반응,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긍정적인 반응은 "몇 년 더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를 한 네티즌도 있었다.
반면 부정적인 반응은 "너무 빨리 복귀한 것 같다." "삼성 유니폼이 익숙한듯하다."라는 반응이 있다.
나는 임창용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하고 싶다.
'임창용은 역시 임창용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임창용이 데뷔한 95년의 해태는 이종범이 한참 날아다니던 시절이었고 선동열은 해태의 뒷문지기로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이후 선동열이 일본 진출을 하고 난 뒤 마무리는 임창용의 자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창용불패'가 되었다.
임창용이 등판하는 경기는 무조건 이긴다는 느낌과 강한 신념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점은 임창용은 도박을 했어도 선수이다.
필자에게는 이런 신념이 잇다.
'운동선수는 결과로, 가수는 감성으로 말한다.'
임창용은 과거 도박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켰고, 잘못을 시인했다.
그리고 징계를 받았고, 연봉의 전액을 기부했다.
솔직히 연봉을 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 연봉은 비시즌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돈을 좋은 곳에 사용해달라고 기부를 한 임창용이다.
물론 필자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과연 안지만, 윤성환은 징계를 다 받고 나온 걸까?
마음의 부채 없이 떳떳하게 던질 수 있을까?
임창용은 선임으로서 그 책임을 지고 후배들을 감싸 안았다.
선수는 결과로 말한다.
필자는 그걸 믿는다.
과거는 과거의 일이다.
이미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아무튼 임창용 선수, 고향팀에서 마무리 잘하고 은퇴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