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두 팀, 해태와 롯데의 이야기
영화 '퍼펙트게임'을 본 독자들,80년대~90년대 프로야구를 보았던 올드팬분들은 이 두 팀을 기억할 것이다.
80~90년대 최고의 전성기였던 두 팀, 연대 출신의 선수들과 고대 출신 선수들의 주축이 된 두 팀, 그리고 각각 선동열, 최동원이라는 국보급 투수들을 보유했던 팀,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다.
우선 해태 타이거즈는 초창기에는 가장 전력이 약했던 팀 중 하나다.
오죽하면 '오리궁둥이'김성한이 타자-투수 겸업을 했을까.(이때 프로야구 유일무이 10-10 클럽(10승-10 홈런)이 나왔다.)
그러나 '우승 청부사'김응룡 감독이 해태를 맡으면서 명실상부 강팀으로 성장했다.
해태는 80년도 후반부터 90년도 후반까지 V9을 달성했다.
해태는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해태의 선동열, 롯데의 최동원 이 두 선수가 팀에서 상징하는 바는 크다.
두 선수는 팀의 에이스이자 기둥이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인 선동열, 그리고 '떠있는 태양'인 최동원.
이때 당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여론이 높았고, 이를 이용해서 롯데와 해태가 붙으면 단연 난리가 났다.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감정, 해태제과와 롯데제과의 기업 라이벌, 연대 출신과 고대 출신의 대결이었다.
최동원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맺을'뻔' 했지만, 입단 계약금, 병멱 문제 등 발목을 잡는 사항이 많았기에 최동원은 미국이 아닌 조국의 프로야구를 택했던 것이다.
만약 최동원이 이때 당시 입단 계약금, 병멱 문제 등 발목을 잡을만한 사항이 적었고, 본인도 스스로 OK 하고 사인했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거는 박찬호가 아닌 최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최동원은 고향인 부산 롯데 자이언츠로 와서 롯데에서 뛰었다.
당시 최동원의 장점이라 하면 '배짱 있는 투구'였다.
예를 들어 김성한을 상대할 때, 김성한이 가운데로 오는 공을 받아쳐서 넘겼으면 다음번에 상대할 때도 그 코스로 밀어 넣어서 삼진을 잡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승부를 즐기는 '강심장'이였던 것 같다.
아무튼, 최동원은 '영원한 캡틴'조성환, '작은 탱크'박정태보다 롯데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는 투수 중 한 명이다.
어쩌면 최동원은 진짜 '야구를 사랑하는 사나이', '야구에 미쳐있는 사나이'라고 보고 싶다.
팬들에게는 사랑을 받은 최동원도 구단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부산의 상징', '롯데의 혼'이라 불리던 최동원은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고 구단의 일방적인 횡포에 홀로 일어나서 프로야구 선수 협의회를 만들고 초대회장으로 취임하고 구단의 횡포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선수들에게는 '든든한 큰형'으로, 구단들에게는 '반드시 빼야 하는 가시'로 된 것이다.
결국 최동원은 그렇게 사랑하던 롯데를 떠나고 삼성으로 이적한다.
그리고 삼성에서 가슴을 치며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는 대단한 사나이를 만나보자.
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 또 한 명의 사나이는 '무등산 폭격기'선동열이다.
그는 고려대 출신으로 고대에서도 에이스로 소문나 있었고, 해태의 스카우터가 그를 데려가기 위해 고교시절에 부모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아무튼, 선동열은 대단한 선수였다.
프로야구 전무후무 0점대 방어율.
프로야구 통산 방어율 1.20
11 시즌 동안 0점대 방어율을 5번(1986년, 1987년, 1992년, 1993년, 1995년)
1점대 방어율 1번(1985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을 기록했고 최대 높은 방어율은 2점대(1994년)였다.
요즘 투수들 중 자책점 1위를 보면 16.08.18일 현재 두산의 더스틴 니퍼 투가 1위(2.99)이다.
국내선수중에서는 두산의 장원준 선수가 3.42로 이 부분 국내 선수 1위다.(니퍼트, 핵터를 제외하고 순수한 국내 투수들 중1위)
이 기록을 두고 보면 선동열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올 것 같다.
선동열의 별명은 여러 가지 있다.
투구폼에서 오는 '무등산 폭격기', 일본 주니치 시절 마무리로 올라와서 잘 막았던 '나고야의 태양'이 대표적이다.
선동열은 선발뿐만 아니라 클로저로써도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해태는 선동열이라는 카드를 잘 사용했다고 한다.
김응룡 감독이 선동열이 몸이 안 좋은데, 일부러 불펜으로 가서 캐치볼 하라고 지시를 했고, 선동열이 불펜에서 캐치볼을 하면 다른 팀들은 겁을 집어먹고 부 너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선동열이라는 투수가 대단했고, 상대팀에게는 압박을 주는 카드였다.
선동열과 최동원, 그리고 롯데와 해태.
이때 당시에는 지역감정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영남과 호남,이 두 지역은 말을할수없을정도였다고한다.
자,아무튼 해태와롯데,이 두팀은 선동열,최동원을 넘어서 최고의 라이벌이자 언제나 명승부를 보여준 두팀.
지금 해태는 기아로 이름을 바꿨지만,호랑이 정신은 살아있다.
가끔씩은 해태와 롯데,이 두팀의 라이벌전을 꺼내보며 다시 흥분을 느끼는것도 좋다고본다.
추억으로,향수로...
--(라이벌,그들의이야기는 제가 잘 알지못했던 80년대부터 현재의 팀별 라이벌을 기획한 칼럼으로 다음에는 두산과 LG 혹은 NC와 롯데로 돌아오겠습니다.미숙하게 끝내는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