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빙하를 부수고, 한 걸음 더 내디딘다. 무엇도 아닌 무엇을 위해, 정상을 향해.
카프카는 책을 두고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니체는 ‘철학은 망치다.’라고 했던 철학자였다.
이토록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말을 바탕으로 나는 부수는 독서법을 갖고 있다.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느끼고, 그 생각에 한껏 잠수한 뒤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이전까지 ‘지식’ 혹은 ‘지혜’라는 이름으로 불러온 얼음들을 깨게 된다.
쓴 이의 생각에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위로 인해 내 안의 얼음이 깨지는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접한 철학은 많지 않은 편이겠으나, 만나온 철학들은 전부 망치와 같이 나를 부수곤 했다.
항상 부서지는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처럼 어떤 지향점을 향해 얼음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벨탑이기에 결국 무너지고야 만다.
철학이라는 망치로, 책이라는 도끼로.
해빙, 얼음을 부수고 나아가면 그 끝엔 더 많은 것이 있다.
이를 얻는 것이 바로 해빙을 통한 해빙(having)인 것이다.
얼음이 녹은 자리에서 무언갈 줍는 순간, 그것은 내 것이 된다. 해빙이 곧 having이 되는 시간이다.
이렇게 얻은 것도 끝내 부숴지겠지만, 모래성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나를 지탱해 살아가게 해준다.
어느 순간에는 깨지며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파편들에서 얻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작은 얼음 조각이 빛을 받아 반짝일 때, 그 안에 든 무언가가 또렷하게 보이는 경험은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디작은 그 얼음 부스러기에도 배울 점은 들어있다.
지식이 깨진 자리에서 파생되는 것, 나는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한다.
원래 존재하던 ‘지식’이 ‘깨지는’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지혜’
참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오늘도 읽고, 부수고, 다시 쌓기를 반복한다.
얻고 싶은 게 많다면, 반대로 책을 통해 깨보는 건 어떨까?
만약, 얻고 싶은 게 많을 때라면 적절히 부숴서 얻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읽는 순간, 나는 부서져 새로 태어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