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by 궤적소년

심리학에는 ‘감정 라벨링’이라는 개념이 있다. 감정 라벨링이란, 이름 그대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명명하는 것이다. 언뜻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감정에 이름 붙이기’는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던 시기에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던 방법이다. 나는 상담을 자주 받던 시기, 감정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단지 기분이 나쁜 것을 넘어서, 어떤 감정인지조차 잘 알 수 없어 그 안에서 질식할 듯 헤매던 날들이었다. 그때, 상담을 받던 두 곳의 선생님이 공통적으로 말씀해 주신 게 있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한 선생님은 게임 용어에 빗대어 설명하셨다. 나쁜 감정이 갑자기 몰려올 때면 “갱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해보라는 거였다. 그 말이 왠지 웃기기도 했지만, 무시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용어들로 그 이름을 대신했다. 그러면 정말로 감정의 정체가 조금은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정체불명의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는 감정 하나가 되었고, 나는 그 흐름을 타고 빠져나오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밤이 되면 나는 꼭 반추 사고에 빠지곤 했다.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그 속에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 감정이 뭔지 몰랐을 땐 그저 괴로운 것뿐이었다. ‘왜 또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건 반추사고구나’ 하고 명명하게 되면서부터, 감정은 점차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형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충동이 올라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충동이 생기는 순간이구나’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동은 한발 늦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선생님은 감정을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이름을 붙인 다음엔, 그 친구가 문을 두드리듯 나를 찾아온다고 상상하라고 했다. 처음엔 다소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곧 그 방식이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얘 또 왔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이 내가 아닌 ‘무언가’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나는 우울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그 감정을 잠시 맞이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름 붙이기는 감정의 수용과도 연결된다. 감정을 밀어내고 버리려 하지 않고, 그저 ‘아, 네가 왔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감정들, 이를테면 무기력, 슬픔, 공허, 불안 등은 이름을 붙인 뒤로 점점 구별이 쉬워졌고, 다루는 일도 수월해졌다. 우울과 슬픔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도, 나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들이었다. 그래서 우울과 슬픔의 차이를 찾아보며 우울한지 슬픈지 모를 때마다 찾아봤던 내용을 근거로 판단해서, 내가 우울한건지 슬픈건지를 재보기도 했다. 그렇게 재보고나서 ‘우울이구나.’ 혹은 ‘슬픔이구나.’ 이런식으로 명명할 때,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침식하는 존재가 아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감정에도 언어가 필요하다. 감정도 이름이 있어야 다룰 수 있다. 이름 없는 감정은 뿌옇고 무겁고 두렵지만, 이름 붙여진 감정은 정체가 분명해지고 손에 잡힌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원래부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저 감정일 뿐이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첫걸음이 바로 ‘이름 붙이기’다. 감정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 있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무언가가 찾아왔다면, 그 친구에게 조용히 이름 하나 선물해 보자. 그 작은 이름표가, 생각 이상으로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에게 내미는 도전장, 치열한 장기전의 시작을 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