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0월, 우리의 썸이 끝났다.
두 번째 데이트로 우리는 열대식물원에 갔다.
별 거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사진은 좀 남겼다.
코인노래방도 가고 서점에도 갔다.
마라탕과 술을 사서 대실한 방으로 갔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마라탕도 먹었다.
맥주도 한 캔 같이 했다.
이 날로부터 며칠 지나서는 손등에 뽀뽀를 한 S였다.
직후 S가 "얼굴에 하긴 아직 일러"라고 말했던 것도 기록에 남아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또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날이었다.
우리가 사귀게 된 날.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센터를 가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여느 때랑 다름없이 S네 앞 벤치에 갔다.
진지하게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S는 우리가 이미 암묵적으로 사귀고 있단 입장이었다.
나는 그래도 망설였다.
사귈지 말지, 그에 대한 이유 또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야기 후반엔 S가 내게 선택권을 넘겼다.
당장 사귈지 말지에 대해서.
당장이 아니라면 크리스마스 때까지 지켜보기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의 고민 끝에도 빙 돌려 얘기했다.
그러자 S는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제서야 나는 "사귀자는 얘기야"하고 했다.
S도 "오늘부터 1일"이냐며 받아줬다.
잘 부탁한단 말로 끝맺고 집으로 돌아와서 일기장에 이 사실을 남겼다.
1. 스킨십 및 애정표현은 되도록 먼저 하지 않기
-내가 먼저 하면 부담스럽고 귀찮아진댔음
2. 플라토닉한 연애를 추구하기
-S가 바라는 지향점이 플라토닉이니까
라는 메모가 일기에 첨부되어 있다.
플라토닉이란 말을 S가 직접 꺼낸 것은 아니었다.
서로에게 정신적인 의지를 하자는 S였기에 그렇게 메모해뒀다.
이후 일기를 돌아보면, '영원할 수 없대도 이 행복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써있기도 하다.
아마 불안정한 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중순 즈음, 또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진 않다.
다만 아래와 같은 기록은 발견되었다.
'누나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책임 질 마음이 있다고도 했다.'
이런 말들이 써있는 걸로 보아 상당히 애틋한 우리의 시작이었다.
또 어떤 날에는,
'내가 사랑 받고 있단 것과 사랑 하고 있단 것, 그리고 살아있단 것까지도 느끼는 부분이 많아져간다'고 적혀있는걸로 봐선 좋은 영향을 받으며 사랑했던 것 같다.
사귄지 9일째 되는 날에는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
그날 메모를 들춰보자면, 이런 말을 써뒀다.
'사귄지 9일, 나는 내가 이토록 행복해지는 순간도 있음을 체험했다.'
이런 하루도 있었다.
'정말, 정말 과장 안 보태고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을만큼 행복한 하루였다.'
불안한 날에는 '나쁘거나 위험한 쪽으로 의존하고 있진 않은지도 하루종일 생각했다'고 남겨져 있기도 하다.
월 말이 다가와서는 내 과거를 내가 안 좋게 생각했었다.
통화를 통해 '과거는 상관 없다'는 S의 말을 들었다.
이런저런 조언과 S를 믿고 의지해도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돌아보니 아직 불안정했지만 점차 안정되어 가는 달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