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에세이로
나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믿을 수 없었다. 어제 느낀 사랑이 오늘은 증오로 바뀌고, 아침에 느낀 기쁨이 저녁에는 슬픔으로 변한다. 감정은 너무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멀리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이름 붙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름 없는 감정들은 내 안에 쌓여만 갔다. 우울, 불안, 분노, 기쁨, 사랑.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뒤섞여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감정을 믿을 수 없다면, 적어도 기록은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치 과학자가 별을 관측하듯,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봤다. 우울이 찾아오면 그것을 블랙홀에 비유했고, 광기가 휘몰아치면 초신성 폭발에 빗댔다. 사랑은 중력이었고, 일상은 궤도였다. 나는 감정에 별자리를 그렸다.
이미 지나간 감정이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몇 년 전의 사랑이, 몇 달 전의 슬픔이, 어제의 분노가 여전히 나를 비춘다. 그것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별빛처럼, 감정도 시간을 가로질러 도달한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궤도에 비유하며, 내가 겪은 감정의 여정을 기록했다. 75편의 시를 쓰며, 나는 내 감정의 지도를 그렸다. 어디서 시작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중력에 이끌렸고, 어떤 폭발을 겪었는지.
하지만 시만으로는 부족했다. 시는 순간을 포착하지만, 그 순간들 사이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시가 별이라면, 에세이는 별자리다. 점들을 이어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것. 감정의 순간들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우울, 광기, 사랑, 일상. 내가 겪은 감정들을 천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 블랙홀, 초신성, 중력, 궤도. 이 단어들은 과학 용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감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왜 어떤 날은 우울하고, 왜 어떤 날은 기쁜지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감정을 기록할 수 있다.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고, 글로 남길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면, 그들도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별빛이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하듯, 내 글도 시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이 궤적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내가 그린 별자리가 당신의 밤하늘에도 보이기를. 그래서 당신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당신의 감정도 우주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되기를.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감정을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기억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