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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잉 Aug 11. 2024

2회차 뉴스탭 이야기(EP.1)

EP 1. 인생은 언제나 입조심 



 첫 번째 에피소드는 생활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입사 첫날, 대충 팀원 소개와 자리 세팅이 끝나고 점심을 다 같이 먹으러 나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사님 한 분께서 말씀을 걸어주시더군요.



"우리 아무개 회계사님은 스타크래프트 알아요?"



한때 국민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1998)




 지난 '3년차 수습회계사 이야기' 시리즈에서 말씀드렸던 적이 있듯 저는 90년대생입니다. 그것도 90년대생 남자. 당연히 알죠. 안다 수준이 아니죠.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운동, 게임 잘하면 무지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공부 잘하는 것도 인정을 받기는 하죠. 그런데 그때는 공부를 잘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안다기보단 '잘해야 된다'. '잘하면 좋다'의 의미로 알고 있을 때잖아요? 그래서 운동이나 게임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미래에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나 게임은 잘하면 바로 지금 도움이 되거든요.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리그 오브 레전드가 2011년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잘하는 게 인정받는 기준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게임하면 아직 '스타크래프트'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요. 그러니까 저는 10대의 절반 이상을 거의 스타크래프트가 왕좌였을 시기에 보낸 셈이죠.


 순간 어린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나름 대학교 넘어오고 나서도 초창기까지는 열심히 했던 축이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어우, 당연히 알죠"



그리고 이어서 나온 말. 저는 말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해야 했습니다.




"잘해요?"















"음...네. 친구들이랑 했을 때 거의 진 적 없는 정도?"



사실입니다. 지금에서야 당연히 제 친구 중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은 없고(있다고 해도 정말 가끔 유즈맵 하는 정도) 당장 저도 안 한 지가 거의 9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창 관심 있어 할 때는 열정적으로 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거의 진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좀 더 정확한 사실은 "근데 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지금은 못 합니다"까지 붙여줘야 하는데 그때는 별생각 없었습니다. 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니 어차피 저분들도 다 옛날에 했던 분이실 테니까 말이죠. 나이 먹으면 추억에 산다고 과거의 취미와 추억 얘기는 언제 해도 재밌잖아요? 그분들이나 저나 같은 추억을 공유한 셈입니다. 당연히 기준은 과거, 즉 스타크래프트를 한 창 했을 때의 기준이겠거니 하고 저 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술렁술렁하더군요.



환영 회식의 밤이 되었습니다. 1차 때 모든 팀원이 참여하고 2차부터는 가는 사람만 가게 되었는데 잠깐 이야기가 또 나왔죠.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나중에 같이 한번 하자고 하셨습니다. 흔쾌히 오케이 했습니다. 팀원분들이랑 친하게 지내고도 싶고, 또 추억 삼아 같이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해서요. 곧 레벨테스트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다고 하시길래, 기회 되면 같이 피시방이나 한번 가시죠 이러면서 웃어 넘겼습니다.










그렇게 입사 첫 날의 밤은 저물어갑니다. 그 피시방과 레벨테스트가 코 앞까지 다가와있음을 미처 모른채.


















입사한 지 둘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행정 처리 좀 하고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 개인적으로 평가모델 이런 거 찾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어제와 같이 나가서 다 같이 먹고 왔는데, 점심을 좀 빨리 먹은 탓인지 점심시간이 남아있더군요. 자리로 와서 공부할 거 하고 있는데, 저한테 스타크래프트 아냐고 물어봤던 이사님으로부터 카톡이 와있었습니다.





"아무개 회계사. 잠깐 내 방으로 올 수 있어요?"









"넵. 노트북 들고 갈까요?"










"아뇨, 그냥 오셔도 돼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지만 뭐 별일 있겠습니까? 터벅터벅 걸어가서 노크하고 문을 여는데 이사님이 일어나시더니 잠깐 자기 자리에 앉아보라고 하십니다. 썩 앉았더니 말씀을 이어가시네요.



"이 정도라면 회계사님이 하시던 평소의 팅이랑 비슷할까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 말이 저승사자가 죽은 사람 저승으로 데려갈 때 하는 말 같이 들렸어요. 이사님이 잘못했다느니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제가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24시간도 안 되어서 질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자체를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거든요. 가끔 친구들끼리 유즈맵 몇 판 한다는 정도지 사람이랑 1:1을 해본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문제는 이사님들도 저랑 같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사님들은 젊은 측이지만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의 연령대입니다. 보통 그 나이대 선배님들은 취미가 골프나 그런 것이지 누가 스타크래프트를 지금까지 하겠습니까? 추억 삼아 유튜브로 보거나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전날 회식 때 레벨테스트 자리를 마련하겠다느니, 기회 되면 같이 하자느니 이런 말도 다 의례적인 말로 알아들었던 겁니다.



얼떨떨하면서 비슷하다는 식으로 말씀드리고 나니, 같은 방 다른 좌석에 앉아계신 저 형이랑(그러니까 다른 이사님이랑) 1:1을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방 만들고 나서 옵저버는 다 열어두래요. 자기는 옆방 가서 다른 팀원들과 다 함께 접속해서 구경(!)한다고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빌려주신 베틀넷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아무 스타 계정이나 하나 잡고 들어갑니다.

하나 새로 만들까 했는데 이미 쓰고 계셨던 게 있더군요. 근데 '승리한 게임 횟수'가 1,781회입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봤습니다. 다시 봐도 1,781회입니다.


승률이 60%만 되어도 엄청나게 준수한 승률이라고 판단합니다. 애초에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승률이 50%에 수렴되도록 만든 게임이라 50%의 벽을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게 설계 탓이죠. 물론 팀플레이 게임으로 채운 전적이라고 나중에 들었긴 했지만 비범합니다. 승률 60%를 가정해 볼까요? 그럼 '플레이 한 전체 게임 횟수'는 2,968판. 하루에 한 판씩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려 8.13년을 해야 채울 수 있는 숫자입니다.





가슴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데, 저보고 방을 만들라고 해서 'Create' 버튼을 눌러 방을 만듭니다. 방 만들기를 클릭하면 그 계정으로 가장 최근에 만들었던 방 제목과 맵이 자동으로 뜨게 되어 있습니다.






'3대 3, 카리나 닮은 아재들이랑 헌터 ㄱㄱ'







ㅈ됐다 싶었습니다. 진짜 제대로 ㅈ됐다 싶었어요. 이 이사님들은 알고 보니 저처럼 왕년에 스타 좀 했다 수준이 아니라 지금도 하는, 그것도 '겁나 꾸준히 열심히'하는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골프가 취미인 것처럼 스타크래프트가 취미인 셈이죠. 그리고 아까 옆방에서 사람들이 다 접속해서 구경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이분들의 컴퓨터에는(그러니까 새로 입사한 저를 제외한 기존에 있는 팀원분들의 컴퓨터 전부에는) 스타크래프트가 깔려있었다는 것이죠.(바쁜 시즌 끝나고 한가할 때 점심시간 아껴가며 같이 내전을 즐기거나, 다른 사람들이랑 한 두 판씩 한다고 합니다)


저랑 1대1을 하시는 이사님은 그 팀원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81년생입니다. 그런데 팀원들 사이에서 가장 잘하신대요. 그들 사이에서는 거의 김두한이라고 취급받더군요. 떨리는 마우스를 부여잡고 침착하게 하려 했지만 2판 해서 2판 다 졌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40대 중반에 그렇게 잘하면 20대에는 얼마나 잘했다는 걸까요? 회계법인 생활하면서 점심시간에 나가서 하고 오고 그랬다던데 진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가 봅니다. 그 뒤로 다 같이 4대4도 하고 그랬는데, 다른 분들도 전혀 못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한 번 공개처형(이라고 하기에는 스스로 자초했지만)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지금도 가끔 장난성 조리돌림을 당하곤 합니다.





"거의 진 적 없었지만 마침 여기 와서 1패 해버린 OOO 회계사 화이팅!" 이런 식이나,




성격상 거짓말을 하면 표정에서 어렴풋이 티가 나서 거짓말을 못하고, 일부러 더 안 하려고 한다고 하는 말에

"아닌데? 거짓말 잘하던데?? 스타 잘한다고~" 이런 식이죠.





요즘엔 그 떡밥도 이제 식고, 일이 바빠져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안거리도 되고 뜻깊은 생각도 하게 된 일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언제나 어디에서나 입 조심을 해야한다는 걸 알고, 그걸 알게 해줬던 다른 경험을 겪고 지금까지 잘해오다가 또다시 깨달았다는 냥 반복하는 걸까요




지금부터는 조심 몇 개월 잘하다가 지금의 기억이 잊혀져 쯤, 조심을 한 번 못 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리게 되는 경험이 한번 생기겠죠?




오히려 입사한 지 48시간도 안 되어서 벌어진 일이라 다행일까요? 저는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데 안 한 지 오래되어서 지금은 잘 못한다. 이런 식의 대답이 가장 무난하겠죠. 여튼 살면서 항상 입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언제 이런 일이 또 생길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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