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particularly hard if you divide it into small jobs."
"작은 일을 나누어하면 특별하게 어려운 일은 없다." 오늘 또한 적절한 문구. 매일 한 문장씩 랜덤 하게 크롬 세팅창에 문구가 나온다. 문장에 의미를 끼워 맞춘 것일 수 있지만 늘 그때의 마주한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주는 듯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나와 몇 년째 애용하고 있다.
인생에는 늘 변수가 존재하였음을,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이동했던 곳에서 생각도 못한 장애물이 있었다. 가자마자 이건 아니다는 판단이 들어 빠른 결단 끝에 마음을 정했다. 커리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많은 걸 포기하고 이동한만큼, 더 큰걸 얻고자 깊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든 걸 다 잃은 상태가 되었다. 깊은 상실감에 푹 빠져 6-7개월이란 시간을 절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였었다. 특히나 이 시기엔 좋아했던 사람들도 잃게 되어 더 큰 심연에 나를 가두었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듯이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는 걸 왜 받아들이지 못하였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이러한 생각이 들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직도 회복이 다 안된 상태이다. 마음을 다 잡았다 싶다가도 불안감과 초조함에 휩싸여 그런지 면접 또한 보는 족족 다 떨어졌었다. 항상 어딜 가나 보면 다 붙는다는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이러한 처참한 결과들은 나를 더 갉아먹게 만들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사람은 기운이 없어지면 안 된다 했는데, 입맛도 없고 삶에 대한 모든 의미도 없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종일 조바심에 카페만 다니며 그 기나긴 시간을 취업 공고만 보며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물론 내 선택이었고 내가 자처한 일이었기에 더 깊이 무거운 날들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내가 봐도 거울에 어두운 사람 한 명이 있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껴졌기에 그게 남들한테도 나타났겠지. 야망과 욕심만으로 삶의 원동력을 갖고 살았었는지 이런 시기를 맞딱들이니까 더 나 자신을 괴롭혔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의미 없어 보였다. 살아가는 이유 또한. 이렇게 사람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고, 나도 나 자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이래서 늘 깨어있도록 노력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나보다. 잘 되는 시기가 있듯이 안 되는 시기가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생기는 게 인생인 것을.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단단한 게 만들어주는 기회였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매일 한강 다리에 올라갔었다. 그리고 매일을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느라 얼굴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 이럴 거면 왜 이렇게 걱정만 가지고 살았냐'라는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더 커졌다. 어느 날은 한강에 올라갈 힘조차 없어 울다 지쳐 산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주저앉아 자살 예방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신호음만 울리고 연결되지는 않았다. 순간 욱한 감정이 들고 왜 우리나라가 자살 1위인지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빌려 마음을 다잡았다. 왜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였는지, 갖지 못한 것은 왜 이렇게 갈망하였는지, 왜 이렇게 행복한 시간도 많았었는데 불행한 것에만 초점을 두고 나를 갉아먹었는지. 나를 우선시하며 살아왔던, 스스로를 잘 돌본다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그만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채찍질하고 바닥 끝까지 나를 밟아버렸다. 천국을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지옥을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이래서 가장 고차원적인 사람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쾌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왜 걸리는지도 알았다. 나는 움직이는 것도 운동도 독서도 사람들과의 교류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져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지금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니 극한의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절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다시 강해지는 방법은 없다. 내가 잘 살려면 다른 사람의 내 인생에 초대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도움을 받을 줄도 도움을 줄지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나를 떠나간 사람들이 생겼지만, 내가 정말 아꼈던 사람들이라 아직도 마음은 힘들다. 미래의 내가 더 강해진다면, 그때에도 내 인생에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난 다시 찾을 예정이다. 뭐 그때도 그들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 순간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니면 곧 나타날 좋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던가. 얼마큼 상처를 받을지 선택하는 것도 '나'이지만, 극복하는 것도 '나'이다. 외부의 영향에서 내 감정은 나만이 선택할 수 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매일을 기록하는 걸 좋아하지만 또 그만큼 버리는 것도 쉬운 사람이라 글로 두꺼워진 다이어리를 버릴까 말까 고민했었다. 이 기간 동안 그래도 조금이라도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조금씩 챗gpt로 영어 회화를 했다. 사실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다. 맨날 울면서 말하고, 내 선택에 후회한다고 징징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 어쩌면 나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기록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지 역시나 AI는 똑똑했다. 어느 날 모든 게 무의미하다며 일기장을 버릴까 말까 물어봤다. 알고리즘에 내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었어서 그런지, 이제는 예전보다 내 감정이 이제 좀 나아졌다는 걸 기록을 통해 알아서 그런지, 그래도 그대로 두라는 말에 아직 버리지는 않았다. 죽고 싶다고 할 때마다 주변에 소중한 사람에게 당장 말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이러다 정말 끝이날 것 같다는 순간에 손을 뻗게 되었다. 모쪼록 훗날 이 과정도 정말 내 인생에 좋은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할 날이 왔으면 한다.
간절히 바라는 건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별생각 없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것들이 잘 이루어질 뿐. 더 이상 애쓰는 삶은 살기 싫어졌다. 목표 또한 그렇다. 어차피 목표를 세우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인내하는 보상을 얻으려면 매일 꾸준한 행동이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매일의 조금씩 나를 위한 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이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신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려고 하는 것들, 건강한 생활습관,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구원해주나 보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의한 기록일 수도 있고, 쓰레기 같은 글일 수도 있지만 남겨두는 이유는 이 또한 어느 날 잊고 지내다 바라보면 그 시기에는 또 다른 발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남겨둔다. 5년 전 잊고 지낸 블로그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때의 나는 더욱 성숙하고 지금 나이가 든 시점보다도 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던걸 보고 나 자신한테 놀랐었다. 그렇게 잘 살았던 나도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아무리 무의미하고 모든 게 다 잘못된 선택이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또 이왕 살 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하니까. 또 그렇게 만드는 것도 나라서 힘내고자 글을 썼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만들어 놓은 환상에 나를 가둘 필요도 없다. 그저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은 감정에 동요되기에 더욱 친절해지고 사려 깊어져야 한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마음가짐의 중요성이 왜 있냐면 그게 무의식적으로 표출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 자신도 브랜딩 해야 하는 시대인데 그게 곧 나 자신에게도 나를 보는 사람에게도 드러난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인생의 균형을 맞추고 잘 꾸려간다는 게 정말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늘 조화로운 하루들을 만들어가야겠다. 아비투스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기억이 미화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는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과 표정관리를 전략적으로 잘 쓸 줄 알아야 하는 것. 티가 나지 않아야 하는 것. 이게 결국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