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성탄절 DIY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요새 락다운으로 인해 갈 데가 없어 이케아며 바우하우스(독일의 인테리어 재료 마트)에 어마어마하게 모이는 독일 사람들을 보면 머릿 속엔 이런 생각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어느덧 2020년 12월. 연말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한국에 추석과 설날이 대목인 것처럼 독일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대목인데 올해는 참 썰렁하다. 락다운으로 식당과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고, 이 마저도 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아예 닫았고, 겨울이면 곳곳에 글뤼바인(따뜻하게 데운 와인)이며 겨울 군것질을 팔던 간이매점 같은 것도 올해는 찾기 어렵다. 넓은 광장에 트리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바람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도 두 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연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락다운 기간 연장으로 취소되었다. 해가 4시 전에 지는 어둡고 추운 독일 겨울에 크리스마스 마켓도 없다니… 아쉽다. 정말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겠지? 마트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축 쳐진 분위기를, 마음을 끌어올리려고 캐롤를 켜고 나름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해본다.
어제는 첫번째 대림절 일요일이었다. 독일친구들 소셜미디어에 온통 어드벤트 크란츠(Adventskranz) 촛불을 켠 사진들이 도배되었다. 어드벤트 크란츠에는 4개의 초가 꽂혀 있는데 성탄절을 기다리며 촛불을 밝혀 그리스도의 빛을 집안에 들인다는 의미로 첫째주 일요일은 1개, 두번째주 일요일은 2개... 일요일마다 하나씩 늘려가며 켠다. 네번의 일요일을 모두 밝혀야 하니까 초의 길이도 첫번째 초가 가장 길다.
올해 어드벤트 크란츠는 남자친구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주셨다. 화관의 둥근 모양은 영원을, 화관의 초록색은 생명과 평화를, 화관 위 열매는 부활을, 월계수 잎은 승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건 뭘까?” 화관 위에 뿌려진 금빛 실장식을 만지작거렸다.
“응 그건 천사의 머리카락이야, 천사는 모두 금발이란다. 어이쿠 이건 내 머리카락이네!”
금색의 곱슬거리는 실은 천사의 머리카락이란다. 그리고 그 옆에 어머님의 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놓여있어 어머님이 급하게 치우셨다.
곱슬거리는 천사의 머리카락이라니… 머리카락을 떨어뜨렸을 천사를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천사야 나도 머리가 많이 빠져 요새~'.
매주 일요일마다 어드벤트 크란츠의 초를 켜놓고 성경구절을 읽거나, 캐롤을 부른다고 한다. 나는 촛불을 켜고 소원부터 빌었다. 마침 어제가 음력으로 보름이었기도 해서 보름달에 정수물 떠놓고 빌듯 소원을 말했다. 그렇게 동서양 문화의 퓨전으로 대림절 첫번째 일요일을 보냈다.
12월이면 독일 어린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어드벤트 캘린더 열기.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매일 어드벤트 캘린더를 하나씩 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주고, 동시에 인내심을 길러줄 수 있는 연습이 될 것 같다. 마치 마시멜로 실험처럼.
유아 인내심 수준인 나는 12월 아닌 11월에 벌써 어드벤트 캘린더를 샀다. 그리고 11월 1일에 24일을 비롯한 몇몇개의 칸을 열어봤다. 24일이 캘린더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가장 크고 좋은 것이 들어있다.
초콜렛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 외에 레고, 네스프레소, 록시땅 등 다양한 업계에서 어드벤트 캘린더를 내는데 개인적으로 MAC의 어드벤트캘린더가 굉장히 탐난다. 그리고 부모님 선물해드리게 영양제 어드벤트 캘린더 하나 출시해주면 좋겠다.
올해에는 어린 조카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 직접 어드벤트 캘린더를 만들었다. 구글에 검색하니 직접 만든 멋진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 매년 재활용 할 수 있도록 캘린더용 주머니, 박스 등 프레임만 기성품을 팔기도 한다. 캘린더 안 내용물은 결국 사탕, 캬라멜, 초콜렛 등 소소한 군것질 거리지만 어린 아이들이 무엇이 들어있을지 기대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좋을까?
독일에서 유명한 문구점인 idee에 들러 봉투와 리본 등 여러가지 부자재를 사고 슈퍼에서 캘린더를 채울 군것질거리도 샀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내용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초콜렛과 초콜렛, 캬라멜과 캬라멜은 연속되는 날에 넣지 않을 것, 4~5일에 한번쯤은 작은 소품이 들어있을 것, 날짜가 뒤로 갈수록 양이 조금씩 많아질 것 등... 사소하고 자잘하게 조카들의 마음을 예측해가며 봉투를 채웠다. 넣다보니 적은 것 같아 양을 늘리고, 양을 늘리다보니 무거워져 캘린더들을 걸어놓은 쇠 옷걸이가 축 쳐져서 몇가지는 다시 빼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왜 많은 사람들이 나무 옷걸이를 이용했는지 깨달았다.
3시간 정도면 뚝딱 될 줄 알았는데 이틀 걸쳐 총 7~8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세상에 하나뿐인 DIY 어드벤트 캘린더,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캘린더.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기성품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침마다 이것을 기다릴 조카들을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내일이 12월 1일, 첫 캘린더를 여는 날인데 첫 번째 날에는 창문에 붙이는 크리스마스 스티커가 들어있다. 초콜렛이 아니라서 실망하지는 않겠지?
집을 조금 꾸미고 싶은데 너무 예쁜 데코가 많아 무엇을 사야할지 모르겠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예쁜 것을 고르다 보면 주제 없이 정신 없는 장식이 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먼저 찾아봤다. 핀터레스트에 좋은 아이디어가 참 많다. 독특한데, 쉬워 보이고 게다가 저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독일 사람들이 DIY를 많이 하는 것인가? 마른 나뭇가지에 오너먼트만 몇가지 걸어둔 심플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설탕을 눈처럼 표현하고 미니어쳐를 넣어둔 장식도 특이하고 예뻤다.
일단 있는대로 집에 있는 전구를 꺼내다가 유리 컨테이너에 넣었다. 이케아에서 본 방법인데 창문에 트리모양으로 붙이기 귀찮아서가 아니고, 따뜻한 조명을 보고싶을 때 쓰기 좋다. 전구의 알 크기가 조금 더 작으면 더 반짝반짝 예쁠 것 같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마트에 나가서 오너먼트를 몇가지 사야겠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뭘 사지?'
지갑에 여유는 없지만 마음의 여유를 짜내본다.
그래도 다행히 베를린의 카데베(Kadewe) 백화점에서부터 약 3km의 쿠담 거리는 올해도 크리스마스 전구로 반짝인다. 매년 겨울 길게 쭉 뻗은 쿠담거리 양쪽의 가로수에 전구를 장식해놔서 지나갈 때마다 빛의 터널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거리는 썰렁하지만 아쉬운대로 쿠담 거리를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올 한 해 지친 마음 크리스마스 불빛에 녹이고 모두들 따뜻하게, 축복 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