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웃
요새 독일은 폭설이 내리고, 베를린은 매일같이 영하 -10도를 웃돈다.
추위와 귀찮음을 뚫고 넷플릭스를 보며 먹으려고 집 근처 슈퍼로 팝콘을 사러 갔다. 모자, 마스크를 안에 쓰고 머플러로 칭칭 감아 눈만 보이게 길을 나섰는데도 매서운 바람에 눈물이 맺혔다.
근처 콘서트장 건물을 지나 슈퍼 안으로 들어가던 남자친구가 나지막히 묻는다.
“그 때 초록색 보온병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 한국 유자차 타 줄 수 있어?”
“보온병 기억 안나는데... 근데 왜?”
“콘서트장 건물 앞 홈리스 아주머니가 오늘밤에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차라도 담아주면 어떨까 해서”
“너무 좋은 생각이다. 보온병은 찾아보자!”
“그럼 얼른 팝콘 사서 나가자”
그렇게 팝콘만 덜렁 사서 집으로 향하던 길에 남자친구는 건물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춥지 않으세요? 혹시 Kälte버스 불러드릴까요?”
*추운겨울 홈리스들을 위해 침낭, 따뜻한 차를 제공하거나 쉘터까지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버스
“아니, 괜찮아요.”
“오늘 밤에 너무 추울 것 같은데 따뜻한 차를 좀 갖다 드릴까요?”
“아니, 안 추워요”
“보온병이라 옆에 두셨다가 나중에 드셔도 되요”
“괜찮아요, 오늘 하루종일 차를 엄청 마셨어요”
하며 턱 끝으로 한 쪽을 가리키셨다. 아주머니 뒤쪽으로 사람들이 주고 간 것으로 보이는 카페 종이컵들이 잔뜩 쌓여있고, 누군가 두고 갔을 보온병도 두 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따뜻한 차를 전하고 간 독일 이웃들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동안 살며 추위 속 자리한 홈리스들을 보며 한번도 말을 걸어본 적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 추운 날씨에 괜찮을까?' 생각은 스쳤어도 그저 내 갈 길을 가기 바빴다. 나는 뭐가 그렇게 바빴고, 여유가 없었을까?
종종 남의 일에 참견하는 남자친구의 오지랖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날 만큼은 추워보이는 아주머니를 눈여겨보고 다가가준 마음이 참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베를린 홈리스의 동사를 예방하기 위한 버스
1994년 한 노숙인의 동사로 시작되었고, 매년 11월 1일부터 다음 해 3월 31일까지 밤마다 버스가 지역을 돌며 감기가 걸렸거나 추운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거나 긴급 숙박 장소로 이동시켜준다. 시민이 직접 전화를 걸어 버스가 들러 안부를 확인하도록 할 수 있다. 2020-2021년은 코로나 감염 예방 조치로 긴급 숙박 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따로 수프 버스도 운행하며, 노숙인들에게 오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