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폭력대화'마셜 B. 로젠버그 지음
음성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연대감과 타인수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어느 상담자의 방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타인수용이란, 나와 다른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차이'를 유연하게 인정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니거나, 나와 다른 감정의 양상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물론 수용만 하기보다 '자율성'을 지니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덧붙이긴 했다.
상담사의 말 중에 가장 오래 여운이 남았던 건 "타인수용과 연대감이 잘 발달해서 각자가 가진 기질들 속에서 최선의 '나'로서의 삶을 살고, 대인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보다 좀 더 편안한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면 좋겠다"였다. 이 말은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 있는 책, <비폭력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일상에서 쓰는 평화와 공감의 언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는 핑크색 표지의 책, <비폭력 대화>는 국제적 평화단체 비폭력대화센터의 설립자 마셜 B. 로젠버그의 저서다.
살구빛이 도는 분홍색 표지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된 편안해 보이는 의자 두 개가 있다. 두 의자는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 끝에서 절반만 보이는 상태로 표지를 장식한다. 이는 마치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 의자 스스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고,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두 의자가 서로 연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책의 서두에서 마셜은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느낌과 생각, 행동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책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주의적 판단 내리기, 비교하기, 책임 부정하기, 강요하기를 일컬어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라고 규정한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는 우리 내면에 있는 자연스러운 '연민'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람들과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통해 발화된 말들이 사람들의 귀에 닿을 때 어떤 모양을 지니고,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폭력대화는 4단계(관찰/ 느낌/ 욕구/ 부탁)로 구성된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하고 느낌을 표현하고 그 느낌을 일으키는 내면의 욕구를 찾아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지만 나는 이 책을 읽었던 순간, 내가 첫 번째 단계인 '관찰'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의 형태"라고 말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관찰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찰이라는 미명하에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고 판단하는가. 타인의 의도를 곡해하지 않고 타인의 말과 행동을 있는 모습 그대로 관찰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지지부진한 싸움과 부딪힘 속에서 빠져나와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관찰하는 법도 연습해야 한다.
제대로 관찰하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충족되지 못한 어떤 욕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욕구를 표현하는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을 경우에 자신의 필요를 말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를 무례하거나 잘못된 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스스로의 감정과 필요를 무시해선 안 되며 또한 다른 누군가의 욕구를 좌절시켜서도 안 된다.
모든 욕구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충족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비폭력대화>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해주고, 당장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은 상태, 대화를 통해 다져지는 유대관계를 통해 '연민'을 발달시키는 대화 스킬이다.
아룬 간디는 초판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마하트마 간디)께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되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린다.
비폭력 대화법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세련된 존중법이다. 이것은 나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부탁, 혹은 마음표현을 연습하는 일이다. 비폭력 대화를 연습하다보면 나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만큼, 상대의 욕구도 존중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무례함에 지나치게 상처받는 일도,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할 일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어마어마한 대양 위에서 편안하게 물 위에 떠 있고 싶은가. 세상에서, 혹은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평화와 공감의 언어로 물들이는 사람들이 결국 그 일을 해낼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