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십니다

나의 진가를 알아보기는 개뿔

by 양윤미

메일함에 새로운 메일이 와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발신인이었다. 웬만하면 바로 삭제했을 텐데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멈칫했다.


“글 잘 쓰십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할 법한 찬사다. 듣도 보도 못한 찬사에 홀린 나는 어느새 메일을 정독하고 있었다. 생판 모르는 나의 이메일 주소를 어찌 알아냈는지는 일단 차치하고, OO문학상에 도전하라는 스팸 맛을 제대로 본 나는 헛웃음이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설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스팸 메일까지 동원하는 문학상만큼 우스운 것도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단체 채팅방에도 메일을 캡처하신 분들이 줄줄이 사진을 올린다. 역시나 나만 받은 게 아니었다. 비슷한 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죄다 받았나 보다. 이쯤 되면 글이라도 성의껏 읽고 선별해서 발송한 것인지 되는대로 누구에게나 보낸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여기 어떤 곳인지 아시나요?"

"상 준다고 글 보내래요."

"조심하세요. 상 매매업자예요."

"내가 그래도 글을 조금 쓰긴 쓰나 보다 기분만 좋고 마시면 돼요."

"유명해지고 싶은 나의 욕망을 알아보다니!"

"내 글에서 똥냄새가 나나, 똥파리가 꼬이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성과를 얻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일의 성취감을 맛볼 때 보람을 느끼게 되어있다. 글쓰기라는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스스로의 가능성을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 달리기로 아침을 열고 원고지 20매를 꾸준히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은 못하더라도 꾸준한 습작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글이 조금씩 단단하게 다져져 갈 쯤에 크고 작은 공모전에 도전하고 여러 플랫폼에 나의 글을 게시하면서 나의 가능성을 점쳐봐야 한다. 글쓰기에서 오는 성취감은 수상, 기고 의뢰, 강연 섭외, 출간, 북콘서트 등등일 것이다. 물론 오직 나만의 만족과 행복만을 위해 글을 쓰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글이란 본래 누군가에게 읽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재료가 된다.


글 쓰는 삶은 외롭고 고독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엉덩이로 버티는 ‘홀로 하는’ 일이다. 외로운 싸움 끝에 열심히 적어둔 습작들을 꺼내 보면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이 떠올라 착잡하기도 하다. 마음속에 떠다니는 이야기를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 문장도 더 써지지 않는 날도 있다. 꺼내 보이기 싫은 후미진 곳까지 정직하게 돌아보고, 가식적이고 거짓된 위선을 제한 후, 잔잔히 일렁이는 깨달음의 파도를 잡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개인적이고 편협한 글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하며 글과 삶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의 됨됨이를 돌아보는 일도 필수다.


타고난 재능과 숙련된 기술을 동시에 요하는 어려운 글쓰기를 통해 탄생하게 된 글들은 자식과도 같다. 창작자가 창작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모의 마음과도 결이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최고는 아닐지라도 나의 최선을 담아낸 글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작품이다. 그런 소중한 글을 누군가 좋아해 준다면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이 기쁘다. 브런치가 괜히 "공감과 응원의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라고 문구를 적어뒀겠나. 고독과 칩거를 견뎌내는 외로운 싸움에 다정하고 상냥한 말들은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수와도 같다.


스팸인 줄 알면서도 읽어본 “글 잘 쓰십니다.”라는 말에 무장해제된 것도 수없는 정제를 거쳐 탄생한 나의 작품을 인정받았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때같은 내 자식들을 사랑해 달라고 구걸할 생각도, 헐값에 처분할 생각도 없다. 아직 어느 경지에 오르지 않은 쓰레기 같은 초고라 할지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는 제대로 대우해줄 생각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하는 것처럼 나도 내 새끼들이 예쁘니까. 손쉽게 욕망을 실현해 얻는 만족감보다, 소중한 내 작품을 아끼는 일이 언제나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건필! 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