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대개의 경우 내 대화의 목적은 일상의 나눔이거나 미래에 꿈꾸는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좀 더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어떠함까지도 용납해줄 수 있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비슷한 대화의 목적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자신의 일상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말하는 사람들이 어렵다. 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 받는다. 나의 소소한 일상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싫다.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힘들다. 속내를 숨기고 포장된 말만 하는 사람들이 거북스럽다.
포장지 없는 날것의 말은 소화하기 어렵다. 데쳐야 할지 쪄야 할지 삶아야 할지 구워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는 것은 무례하다. 괴팍한 말은 괴팍한 말로 돌아오고 정성스러운 말은 정성스레 돌아온다. 몇 초만 멈춰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말을 솎아내는 일이 어렵다면 금과 같은 침묵으로 사는 편이 낫다.
논리 정연한 말들은 듣기 편하다. 이미 여러 번의 사유를 거쳐 확립된 탓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논리 정연한 틀에 잘 짜인 말이라고 다 맞진 않다. 말발 센 사람들이 사이비 신도들을 양산한다. 논리 정연하든 짜임새 없이 서툰 말이든 우리는 언제나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포장지만 보고 속아서도 안되고 들리는 대로 다 믿어서도 안 된다. 말속에 보이지 않는 진심은 귀로는 들을 수 없다. 가슴으로 들어야 알 수 있다.
가슴은 리트머스 종이와 같다. 알 수 없는 거부감과 희한하게 불편한 감정들은 명철하다. 갈비뼈로 감싸진 가슴은 영혼의 중심부일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격려받을 때 간지럽고, 수치스럽고 모욕스러울 때 찢어진다. 이해는 머리가 해도 받아들이는 것은 가슴이 한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슬프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용납하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물리적으로 가깝다고 마음으로도 가까운 것은 아니다. 자주 만난다고 통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지 않는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서사를 아는 사람이 나를 더욱 아껴주는 것도 아니고, 나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는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가슴이 안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살았을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내게 넉넉했을까. 정작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따위 없었으면서 가식적으로 굴었던 순간도 부끄럽다. 모든 '척'들은 허공을 때리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내가 뿌린 마음들이 허무하게 말라죽었을 때, 열매 맺지 못하는 죽은 씨앗을 뿌렸으리라 자책했다. 하지만 좋은 땅에 뿌려야 했음도 이제 와서 배운다. 마음을 배워가는 일은 어렵다. 어려운 만큼 소중한 것이 마음임을 되새긴다.
편안한 사람이 좋다. 나를 아는 지식이 일종의 선입견이 된 사람을 멀리한다. 견견견(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3종 세트에겐 너그러울 수 없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더 예의 바른 때도 있다. 나를 알고 나를 아껴주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말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일이 왜 기적인 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