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녕.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깨닫게 된 부끄러운 단점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스스로 인식한 나의 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눈에 제일 잘 보인다. 완벽한 인간은 없음을 되뇌이며 시간에 기대면, 느리지만 차차 나아진다. 자신의 모난 점에 집중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변하지 않는 약점에 대해 매일 닥달당한다고 생각해보라.
인정하기 힘든 낯뜨거운 약점을 또렷이 마주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두려움을 느낀다. 이렇게 못나고, 이렇게 부족한 나라서 미움받을 것이란 두려움, 버림받을 것이란 두려움, 그리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나의 모난 점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겐 미안한 마음으로 산다.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흑역사를 만들고, 많은 싸움과 다툼을 지나 왔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됐을 일들은 피식 웃음이 나고, 나 때문에 속 터졌을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DNA에 없는 애교라도 시전하고 싶다. 아마 토가 쏠릴테니,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애쓰며 살기로 한다. 특히 많은 찌질한 모습을 편집없이 관람하는 남편에게 가장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한다니 아가페 사랑의 현신인가. 착각이었다. 어제는 분명 아가페의 현신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얼어죽었다. 의사가 아니라서 다시 살려내기가 힘들다. 알아서 사랑을 살려내는 것이 앞으로 나와 함께 살 날들이 좀 더 편해지는 지름길일텐데. 협박이 빠른 나는 역시 못난 사람이다.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적은 없으나 그저 내가 못났다는 사실 자체로 미워하는 사람은 마음껏 미워하도록 내버려둔다. 같이 미움으로 보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 미움은 나의 미움이 아니라 그들의 미움이기에. 생각은 자유고 감정도 자유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가 주고자 하는 것이 다만 미움이라면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미움이 빗발치는 들판에서 어떤 화살도 뚫지 못하는 갑옷을 입은 자처럼 걸으리라. 혹여나 그 미움이 내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더이상 미움이 아니라 폭력이다.
비오는 날마다 쑤시고 아픈, 꺽여버린 날개가 약점이 될 때가 있다. 가끔 내 잘못이 아닌 일들과 이미 내가 어쩌지 못하는 주어진 환경들이 약점이 될 때가 있다. 모두가 공감하는 클리쉐가 내겐 클리쉐가 아닌 경우가 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난감할 때면, 착한 사람들이 다가와 내 시린 날개에 기꺼이 자신의 겉옷을 덮어준다. 꺽인 날개가 다시 펼쳐질 수 있을 지는 나중 문제다. 조금 덜 아플 수 있도록,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도록 지금 나의 안위를 마음에 둔 이들에게 정직하자.
버림받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나를 무섭게 하는 이에게 매달려선 안 된다. 나의 못남을 확인시켜 주고 더 나아질 것이 없는 인간이라 믿게 만드는 사람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나의 어떠함을 이유로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내가 먼저 버리는 편이 낫다. 그런 사람을 애틋해 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다.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랑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하듯, 우리 인생에는 항상 두려움을 뛰어넘을 용기란 것도 존재한다. 내 마음에 있는 말들을 참아내야 사랑 받을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차라리 사랑받지 못해서 괜찮지 않은 편이 낫다.
가끔 겸손한 사람들이 종종 오류에 빠진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거나, 무언가 잘 안 되면 먼저 자신부터 탓하는 것이다. 자신을 타박해야 하는 사람은 남탓만 하는 종자들이란 사실을 명심하자. 나의 최선은 오늘의 내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많이 애썼다면 담백하게 결과에 수긍하고 실수한 부분이 떠오른다면 그 실수와 교차로 얽힌 외부의 잘못들까지 종합적으로 바라보자. 세상에 나만 잘하면 되는 일, 나만 잘해서 유지될 관계는 없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 객관적인 시선은 타인에게도 너그러운 사랑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잘못에도 여유로운 큰 사랑이다.
가끔씩 텅 빈 것 같은 공간엔, 노래로 채우자.
요즘은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 "언니"같은 노래가 좋더라.
정밀아
2021년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
- 올해의 음반, 최우수 포크 앨범 (3집 [청파 소나타] )
- 최우수 포크 노래 ("서울역에서 출발")
2018년 제8회 전국오월창작가요제 대상 ("무명")
<뮤즈온2020>선정, "그리기,쓰기,부르기"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