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최용훈 작가님!
주말에 조금 먼길을 다녀와서 퉁퉁 부은 아침, 우연히 제 시를 영역해 두신 작가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브런치 플랫폼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들 중 제 시를 골라주셨다는 것이 먼저 감사했고, 교수님이신 작가님께서 영역해주신 작품도 영광이었고, 근사한 해설을 덧붙여주신 부분에서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시인들이 가장 공들이는 일은 바로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줄 시어를 고르는 일일 것입니다. 어투 및 스타일을 정하고 뼈대를 완성하는 일도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축과 은유의 최고봉이라는 시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에 아주 어려운 분야이지요.
사실 한글의 맛과 영어의 맛은 서로 많이 다릅니다. 한영 번역과 영한 번역에도 큰 차이가 있지요. 아마도 영어를 가르치시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텐데요. 가끔 번역서를 읽다 보면 영어 원문이 예상되는 문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매끄럽지 않게 번역된 한글 문장에서는 읽는 흐름이 끊기지요. 한영 번역의 경우에는 영어의 뉘앙스와 영단어 사이의 아주 미묘한 의미 차이를 아는 번역가가 맡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어권 거주 경험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번역이란 영역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결코 쉽지 않은 장인의 분야이지요.
저는 해외 유학이나 영어권 거주 경험이 전무한 국내파 영어강사입니다. 몇 차례의 해외여행, 그리고 함께 일하는 외국인 강사와의 협업 정도가 스피킹 경험의 전부지요. (캐나다인, 미국인, 영국인 총 세 나라의 국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악센트 차이로 귀를 쫑긋 세우고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 때 대학원을 다니고 계시던 분께서 제게 논문 해석을 맡기신 적이 있습니다. 전문 번역가 아닌 제게 부탁하셨기에 공식적인 의뢰라기보다는 지극히 캐주얼한 부탁이었지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전문 용어들을 명확하게 해석해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무사히(?) 번역물을 전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때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해외 자동차 기업 사이의 회의 통역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소개를 받고 나간 자리에서 회사 관계자 분께 받았던 의혹의 눈초리는 어마어마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뭘 믿고 제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싶습니다. 일단 할 사람이 정말 없었겠지요. 중간에서 그 일을 소개해준 사람이 저를 마냥 좋게 본 것도 한 몫했을 것이고요.
하루 월차를 내고 다른 선생님께 수업을 부탁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3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도시로 가서 화상 회의를 진행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부끄럽지만 실제로 저는 한 회사의 큰 입찰건을 담당할 정도의 영어 실력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운이 좋았고, 그 회사의 부품 제조 기술력도 탄탄했기에 감사하게도 2차 심사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사정상 2차 회의는 함께할 수 없었지만 한 때의 좋은 추억이자 심장 쫄깃한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도 사실은요. 아무도 몰래 저 혼자서 제 시를 영어로 번역해본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깔끔하게 중도 포기했습니다.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한 확신도 안 서고, 내용이 자꾸만 산으로 가는 것 같았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예상이 되실까요? 정말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시가 자꾸만 설명적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적인 표현은 결코 시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설명을 하려거든 산문을 써야지요.
이 어렵고 어려운 번역을 기꺼이 해주신 최용훈 작가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 시인 듯 제 시아닌 제 시 같은 글.
밸런타인데이에 달달한 초콜릿 같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 너무 감사하네요.
능력자 최용훈 작가님의 글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