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어져 보겠습니다.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by 양윤미

표지의 책날개에 들어갈 작가 소개글을 최근에 완성했다. “어떻게” “독창적으로” 적어야 할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고심한 끝에 겨우 적어낸 소개글을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던 날이었다. 표현력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던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했으니, 염치 불고하고 애정 하는 작가님들께 내 글을 보여드렸다. 도움이 절실했다. 격려도 조언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감사하게도 좀 더 나은 방향이 보였다.


가끔씩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더욱 불타오르기도 했다. 끝끝내 답을 찾아내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탓이다. 정답이든 해답이든, 미지의 세계에서 길을 찾는 과정이 즐겁다. 퇴고도 마찬가지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정말로 쓰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의 엑기스를 뽑아내면, 희열이 찾아온다.


이렇게도 써 봤다가 저렇게도 써 봤다가 다시 수정하고 배치를 바꿨다. 나를 어필하는 글을 적는다는 것은 낯 뜨겁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과연 먹히는 인간인지, 팔릴만한 인물인지 끊임없이 재고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내 글은 어떤 결인지, 어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일지. 등등.


그렇게 수집한 단어들로 저자 소개를 마무리하던 차에 <울산 북구 예술창작소 감성 갱도>에서 예술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작년에는 예술창작소에 거주하는 레지던시 예술가만 뽑았는데 올해는 월 1회 이상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해줄 활동 예술가도 모집했다. 일상과 가까운 예술이자, 예술 그 자체인 삶을 일깨우는 디카시 강좌를 열어보기로 했다. 주중에는 영어 수업을 해야하니 일정은 주말로 잡았다. 디카시 강좌 수업 계획안을 짜서 기획안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지난주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선정된 예술가들은 이번 주 안에 대표 작품 3점과 함께 프로필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시집에도 사진 없이 저자 소개만 실을 생각이었기에 미리 찍어둔 프로필 사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경치 좋은 데 가서 dslr 카메라로 활짝 웃으며 찍으면 그게 다 프로필 사진이지’라는 생각도 한 몫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실리는 사진인데 조금은 공식적인 폼(?)으로 찍는 게 맞지 않나 싶은 것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손바닥 뒤집듯이 갑자기, 그냥 생각이 바뀌는 때가 있다.


급하게 이번 주 안으로 필요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연예인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어서, 셔터는 수십 번 눌러졌으나 포즈와 표정은 죄다 비슷했다. 배경색을 한 번 바꾸고, 옷도 한 번 갈아입고 또다시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포즈로 촬영을 이어갔다. 예약이 꽉 차서 아주 분주해 보이셨기에 나는 재빨리 베스트 컷을 골라냈다. 경력이 많은 분이셔서 그런지 포토샵도 재빠르게 해 주셨다.


두려움 없는 용기는 없다. 해보지 않은 일을 도전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건 겁이 없어서도 아니고 모든 상황이 갖춰져서도 아니다. 두렵지만 이겨내 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한 번 가 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Go or Stop.” 결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나는 요즘 자꾸만 더 넓어지고 싶어서 매번 Go를 누르게 된다.


브랜딩에 대한 춘프카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인용해주신 글귀 한 문장에 긴 여운이 남았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십수 년 전, 나는 내가 왜 마음이 상하는지, 왜 마음을 열지 못하는지, 왜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지 알 길이 없어, 토해내듯 누군가에게 수많은 말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잘 살아보려고, 잘 해내 보려고 아등바등 애쓰는데 그 어떤 열매도 거둘 수 없었던 처참한 20대의 나는 억울하고 서러웠다.


잠자코 들어주시던 그분은 흐르는 강물에 빗대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음을 이야기해 주셨다. 강물은 굳이 가로막지 않아도, 억지로 길을 내지 않아도, 결국엔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러 대양을 이룬다는 말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그저 자기 속도대로 흘러가 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잘 되지 않는, 그런 “때”가 있다는 뜻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흘러온 길을 잠시 돌아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와 올곧게 잘 버틴 대견스러운 ‘나’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려온 구불구불한 길이 예뻐 보이진 않는다. 삐뚤빼뚤한 길이 미워서 그냥 멈춰 선 적도 있었다. 멈춰서서 고여 있던 늪의 시간은 많은 것을 정화시켰다. 흘러갈 때, 멈출 때, 미워질 때, 비워질 때, 약해질 때, 단단해질 때, 모든 인생에는 참 다양한 그럴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를 따라, 바다를 꿈꾸는 달팽이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다.



이 사진으로 한 몇십년 우려먹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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