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사회.
서울대 청소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서울대에서 사망한 청소 노동자는 현재까지 두 사람이다. 서울대 민주화 교수 협의회에서는 두 번씩이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관련자들, 그리고 서울대 학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진지하게 궁금하다.
“919호관의 준공 연도는?”
“우리 조직이 처음으로 개관한 연도”
“관악 학생 생활관을 한문으로 작성하시오”
(7월 8일 jtbc뉴스 보도 참고)
청소노동자에게 매주 치르게 한 서울대측의 필기시험은 2-3개의 질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청소 업무와 무관한 내용이었다. 청소 업무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도 아니었다. 관악 학생 생활관을 한문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성은 뭘까? 시험 결과는 공개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필기시험을 통해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노동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뿐 아니라 “미화팀 업무회의”에 참석할 때 작업복이 아닌 드레스 코드까지 지정해서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정장 또는 남방,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환경 미화를 위한 작업복이 있는데도 정장을 입고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회의에 참석해야할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노동자들의 수고와 그 동안의 공로를 치하하는 목적, 그 정도면 드레스 코드 지정도 애써 납득 해볼 순 있겠다.
직장 내 관계 또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201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업무상 적정범위"는 어디까지로 봐야 할까. 정말 서울대측이 제시한 필기시험은 적정했을까. 수치심과 모욕감도 정신적 고통에 해당하는가. 코로나로 업무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서울대측은 이씨가 좀 더 오래도록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어떤 배려를 했는가. 지위의 우위를 사용해서 회의의 드레스코드를 지정한 일은 합당한 일이었는가.
유족들에 의하면 이씨는 생전에 서울대 측의 갑질을 호소했다고 한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건물을 매일 홀로 청소해야 했던 이씨. 코로나로 배달 음식이 불가피하게 늘어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들고 날라야 했던 이씨. 이씨의 남편이 호소하던 한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힌다.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내 사랑하는 가족, 나의 가족의 출근하는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말이 너무 아프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하루 이틀일이 아니어서 화가 난다. 우리는 쓰다 버릴 기계 부품들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사는 죄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아내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존엄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으로 모면할 일이 아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선을 뿌리 뽑아야 한다. 나와 당신이 손을 잡고, 그 어떤 이유로도 함부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보탬이 되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모두 같은 꿈을 꾸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회적 안전망 그 자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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