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May 13. 2021

‘무한도전’이 지금도 재밌는 이유, 이겁니다

[서평] 재미의 발견(김승일)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는 2021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녀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의 별세를 애도하며 예를 갖추자 진행자는 윤여정 배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곧이어진 그녀의 멘트에 진행자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그녀가 영국인들처럼 고상한 척하는(snobbish)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위트 넘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유머는 자칫 무겁고 식상할 수 있는 소감을 순식간에 재미있는 사건으로 탈바꿈시켰다. 수상 소감에서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면 지루했겠으나 윤여정 배우는 기발하고 재밌는 발언으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웃음을 선사했다. BBC에서 그녀의 수상 소감을 “broken English”라며 까기도 했으나 영국 특유의 Sarcasm(빈정대는 유머)을 고려한 그녀의 위트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미는 신선하고 독특한 지점에서 유발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상식을 비틀어 꼬집는 의미 변화를 부여하며, 럭비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 때, 우리는 재밌다고 말한다. 재미는 사랑 고백처럼 타이밍이 중요하고, 재미는 유쾌해야 재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재미없는 일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재미를 추구하며 살기 때문이다. ‘권태’와 ‘무기력’은 다른 말로 ‘재미를 잃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친구들을 만나고, 영화나 TV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은 재미의 일환이며 낚시, 등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등도 재미를 빼려야 뺄 수 없다. 각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은 제각각의 재미를 추구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취향과 성향, 성격과 외모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우리가 함께 열광할 수 있는 콘텐츠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대답은 “Yes.”다. 모두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콘텐츠는 존재한다. 100만 구독자, 1000만 관객, 역대 최고 시청률과 같은 표현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먹히는 콘텐츠가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뜨는 콘텐츠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김승일 작가의 <재미의 발견>은 대다수 사람을 사로잡은 콘텐츠가 가진 재미의 법칙을 분석했다. 문화부 기자로 4년간 접했던 책과 사람, 콘텐츠와 미디어를 통해 저자 자신의 청춘의 화두이자 소명인 “재미”라는 주제를 풀어쓴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재미의 법칙은 특이(特異), 전의(轉意), 격변(激變)이다. 저자는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어떻게 특이한지, 어떻게 기존의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는지, 어떻게 강렬한 사건을 이용해 상황을 전복시키는지를 알려준다.      


재미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사람을 당혹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프롤로그 中-  


<무한도전>과 김은숙의 드라마,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브레이킹 배드>등은 아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콘텐츠일 것이다. 저자는 이 콘텐츠들이 다수의 사람을 매혹시킨 이유는 바로 보통을 벗어난 “특이”함,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함이라 말한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특이”함을 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는 오직 특이함만을 위해 자극적인 행동이나 주제로 관심을 끄는 콘텐츠는 불쾌감을 준다는 것도 언급한다. 또한 관심을 끌고자 하는 목적 하나로 혐오스럽거나 불법적인 행위들마저 자행하는 사람들의 삐뚤어진 즐거움은 전혀 재밌지 않고 불쾌하다고 선을 긋는다. 선을 넘는 일은 불쾌감을 주며 불쾌한 것은 분명 재미없는 일이다. 일례로 과거에는 누군가를 비하하는 개그가 먹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차별이 담긴 말과 모욕을 주는 행동들에 더는 웃지 않는 시대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태지원 작가의 청소년 교양도서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한다.


“전의”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한다. 우리 고전 다시 쓰기 백일장에서 운문 부분 차상을 받은 저자의 패러디작, <나와 곱창과 흰 쌈무>라는 자작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저자의 몸부림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살찐 내가/ 맛있는 곱창을 사랑해서/ 오늘 밤은 촉촉 침이 고인다.”라는 초반부부터 웃음이 터졌다. 이 외에도 카피추,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개 방식, 은유의 전의, 부캐와 메타버스 등을 예로 들며 저자는 전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격변”에서는 전통적 플롯과 플롯의 조합, 전형적인 클리셰를 깨는 작품들도 차례로 소개한다. 후반부에는 좋은 콘텐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 제작법과 노하우도 실려있다.      


재미라는 화두를 4년간 팠다는 저자답게 <재미의 발견>이란 책도 집중력을 불러일으키고 즐겁게 읽히는 맛이 있다. 좋은 콘텐츠, 뜨는 콘텐츠는 특이하고 흥미진진하다는 말은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재미의 발견>이라는 책으로 기획해서 술술 읽히는 재밌는 문장으로 나열하는 일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심심한 책 표지 디자인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이 유쾌한 즐거움이 남는 좋은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길 바란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 행복한 일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업로드 됩니다.

귀한 싸인본을 주신 김승일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스펙은 자존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