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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Nov 24. 2021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2008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문장론/문예론이라는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삶을 살면서도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을 내려놓을 수가 없던 이십대 후반이었다. 모더니티, 리얼리즘에 대한 심도있는 정의를 파헤쳐주신 교수님 덕에 머리에서 지끈지끈 열이 났다. 이제야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백미터 달리기를 혹독하게 연습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십년도 더 넘게 지난 그 때 그 시절의 책을 펴 보니 열심히 줄을 긋고 필기해 둔 흔적들이 가득하다. 


문예창작을 배우고 싶어서 수강한 수업이었는데 한국 문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시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고서는 소화시키는데 역부족이었다. 읽어볼 자료도 많이 주시고 젊고 패기 넘치셨던 교수님이 궁금해져서 성함을 검색해봤다. 현재 부산의 비평지 "문학/사상"의 편집 주간이자 사상사 연구자로 활동 중이시다. 교수님께서 펴내신 책들의 제목도 어마어마하게 어렵다. 나는 문예론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수료증을 받긴 했으나 내가 정말 글이란 걸 쓸 수나 있을까 물음표만 잔뜩 안고 끝난 수업이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중장년층의 수강생들이었기에 유일한 젊은이였던 나는 적응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학의 시대적 변천사와 문학이 내포한 사상의 시대적 흐름들을 배웠고, 필기도 했고, 예습 복습도 했긴 했는데, 지금 누군가 한국 문학의 흐름과 시류를 아느냐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것 같다. 문예창작 수업을 한 때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어려웠었노라 하고 웃고 말 것 같다.


그래도 내게 남은 것 두 가지는 있다. "삼다주의(다독, 다작, 다상량)"와 "독서천권 행려만리(책을 천 권을 읽고, 여행을 만리를 하고서 글을 쓰라)"이다. 어쩌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은 경험을 하라는 것만큼 좋은 문학교육은 없다. 글을 쓰려면 쓸 소재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세상 유일무이한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결을 따라 지금껏 만들어 온 인생의 무늬, 그런 것들이 바로 글의 소재가 된다. 표현 방식도 물론 각자 다를 것이다. 시, 수필, 소설, 에세이, 논평, 평론, 기사 등등. 


"영어, 10살에 시작해도 될까요?"의 저자이신 해나쌤은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 의견에 부딪혀 악플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나는 쉽지 않은 여정을 꿋꿋이 버텨내고 아이의 속도에 맞는, 즐거운 영어교육을 위해 애를 쓰고계시는 작가님의 행보를 보면 가슴이 뛴다. 교육관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나게 행복한 일이다. 


영어 교육에 관련해서 입만 털 줄 아는 나는 영어 관련 책 한권 내본 적은 없다. 그래서 해나쌤이 넘사벽같아 보이고 작가님만의 톡톡튀는 입담이 부러워질 때가 많았다. 그런 내게 작가님은 "10년차 영어 강사신데, 뭐, 그 이상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라며 힘을 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은 작가님이 삶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토로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힘들면 잠시 쉼표 찍으세요. 그런다고 큰 일 안생기더라고요. 언제나 내가 가장 중요해요."라고 했다. 작가님은 그런 내게서 위안을 받으셨다고 한다. 


내가 감히 누군가를 위로할 깜냥이 된다고 착각하고 살던 때에는 제대로 위로를 건넨 적이 별로 없었다. 머리로만 던지는 위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정성이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깨닫게 된다. 나를 위한 글이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 그것이 나의 글쓰기다.


시를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문예창작 수업 한 번 들은 것밖에 없노라 말할 수밖에 없다. "시인의 시선"이란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이들은 S급 A급 문예지도 아닌데 요즘은 아무나 시를 쓴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평가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안다. 그런데 등단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의아한 점도 없잖아 있기에 등단하지 않고 시집을 내시는 분들을 나는 존경한다. 등단한 지 몇 십년 되었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보다 우리 포기하지 말고 같이 꾸준히 계속 써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좋다. 


우연히 어떤 문예지의 편집주간을 통해서 내 시에 대한 평가를 듣게 되었다. 나는 신랄한 비평도 환영한다 말했고 그 분은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내 글을 까주셨다. 사실 내 글을 까기 보다, 좀 더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 사십분이 넘도록 강의를 해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 통화를 통해서도 여러가지를 건졌다. 할 수 있다면 내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누구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을 쓸 수는 없다. 나 역시 모두에게 의미를 주는 시를 쓸 깜냥은 없다. 그저 내 글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그 글이 정말 필요한 시점에 가 닿기만을 바랄 뿐이다. 


일상이 가지는 힘, 하루하루의 삶이 모여 만드는 것이 인생이라는 철학을 신봉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탁월함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다."라고 했다. 글은 누군가의 인생이기도 하다.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는 인생에 나는 함부로 급을 매길 수가 없다. 나의 글이 어떤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도 나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 역시 따스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글을 읽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 대한 글들을 위주로 엮어내는 독립책방에서 작가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원고가 선정되면 인쇄비도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해보지 않고 아쉬워하는 일은 이제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기획서 형식에 맞춰서 작성해 두었던 문서들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여 책방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한 달 후, 책방에서 연락이 왔다. 기획안은 통과되었고 원고를 검토하고 싶다고 했다. 그간 수십여 명이 시집 원고를 보내왔지만 한 번도 선정한 적이 없었다는 말에 그간의 답답함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원고 수정중이다. 시를 몇 편 더 추가하고 각 챕터별 소개글을 좀 더 보충할 생각이다. 이제와서 다시 보니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상한 글들도 많아서 싹 다 뺀 부분도 있다. 낯뜨겁지만 역시 초고는 쓰레기인가 보다. 그래도 초고에 들어있는 날것의 생각들을 좀 더 다듬어서 보완해볼 생각이다. 지금 나는 세상을 향해 가소롭기 짝이 없는 잽을 열심히 날리고 있다. 잽은 원래 그저 잽이고 스텝도 엉망진창으로 엉켜서 쪽팔리긴 하다. 그래도 잽이 되야 스트레이트 펀치도 훅도 넣어볼테니, 일단 잽이라도 계속 날려보자는 게 오늘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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