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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Nov 30. 2021

인류애로 가득 차야 글도 써지고 티칭도 되고

뜨끈한 붕어빵 가슴에 품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고, 어떤 마음으로 에세이를 썼는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고르고 골랐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을 표현해줄 펀치 라임을 쭉 써놓고 그중에 가장 제목다운(?) 표현을 골랐다. 그전에 메모해두었던 후보들 역시 "~는 없다"로 끝났었다. 죄다 뭐가 없다는 건지 찬찬히 둘러보니, 사실은 "~가 있다"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꼼수였다.


"OOO 않은 OOO 없다"

 

편집자가 제목을 고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원고의 내용과 제목이 살짝 엇박자가 난 느낌을 나도 부인할 순 없었다. 책의 얼굴인 표지를 부정적인 어미로 장식하고 싶진 않았다. 좀 더 긍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담아낸 다른 표현을 떠올려야 했다. 고심해서 써둔 가제이긴 했지만, 나 역시 제목에 대한 약간의 못마땅함을 지울 수가 없던 차였다. 제목과 어울리는 표지 디자인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원고의 메시지를 담자니 제목과 어울리지 않고, 제목만으로 느낌을 살리자니 배가 산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제목이 NG라는 것은 더욱 명확해졌다.


편집자와의 통화 이후 기획안과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책의 구성이 다소 불친절해 보이기 시작했다. 챕터 인트로에 각 장의 분위기와 의미를 전달하는 디카시를 배치해둔 것 말고는 프롤로그 에필로그도 안 썼고, 챕터별 소개글도 쓰지 않았다. 이해와 감상은 독자의 몫이겠으나, 적어도 길잡이가 될 안내문 정도는 적어두었어야 했다. 챕터별 도입부 소개글이 필요하다는 편집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명확해지는 지점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길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본론만 짧게 말하기를 선호하는 사람이었기에,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시키면 슬슬 짜증이 일고, 구구절절 서론이 길면 집중력이 저하됐다. 그런 내가 어떻게 연년생 자매를 키우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십 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신은 내게 좀 더 길게 말하는 법, 자세히 상냥하게 설명해주는 법, 쓸데없는 TMI의 효용 따위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덕에 나는 쓸데없는 말을 재밌고 웃기게 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바로 어제만 해도 사춘기에 접어든 5학년 여학생과 수업 도중에 기싸움을 했던 것은 안 비밀이다.


수십 수백 번의 수정과 퇴고를 거쳐 책이 완성된다고 한다. 시 한 편도 그렇다. 시어를 고르는 일도, 시의 행간에 의미를 남겨두는 일도, 각 행과 연의 구조를 구상하고 화자의 말투를 정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영감이 오는 대로 받아 적기 때문에 시를 전혀 퇴고하지 않는다는 시인이 있고, 적어도 최소 백 번 정도는 퇴고를 한다는 시인도 있다. 나는 결코 전자는 아니다. 내가 적어둔 시의 초안들은 "영감"을 담고 있는 예쁜 쓰레기니 말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하인드 컷이 존재할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탄생하게 된 의미 있는 작품은 얼마나 의미 있을까. 한 인간의 삶이 곧 예술 작품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친밀한 감정을 느낀다. 그 사람이 나와 의견이 같든 같지 않든 말이다.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피, 땀, 눈물이 들어있고, 삶이 있고, 사람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싹트는 것이 인류애인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때운 후 책상에 앉았다. 시 몇 편을 더 추가하고, 어울리지 않는 시 몇 편을 뺐다. 점심을 먹고 챕터 소개글을 주섬주섬 편집했다. 그러고 나니 제목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제목과 어울리는 표지 이미지도 또렷이 보인다. 닥살이 돋았다.


소름 돋는 환희를 만끽하다 시계를 봤다. 오후 한 시 . 출근시간이다. 친절하지만 불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엄격한, 영어 선생님이  시간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비가 많이 온다. 퇴근 후에 비가 계속 오면 차를 몰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할 텐데. 길가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달라고 아침에 약속했던 것이 생각난다. 우산과 함께 지폐  장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천 원의 행복 따끈하게 가슴에 품고 아이들 픽업하러 가야겠다. 오늘은 친절하고 다정하기만  날이 되어겠노라, 이룰  없는 로망을 매일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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