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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Dec 21. 2021

“Passion” for work

내겐 너무 좋은 당신, my work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페트리샤 첸 박사는 대학원 재학시절 논문을 하나 썼다. 논문의 제목은 “Finding a fit or developing it : Implicit theories about passion for work” (딱 맞는 일을 찾거나 개발시키는 것 : 일에 대한 열정에 관한 함축적 이론들)이다. 평소에 내가 이런 논문을 찾아 읽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 강경일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알게된 흥미로운 논문이었다.


“어떤 일이 내게 열정을 줄까?”라는 질문의 답은 “나는 어디에서 열정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즉, 일에 대한 열정으로 차오르게 만드는 특정 조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기질이나 성향, 직무 범위나 직종 등에 따라 물론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지만, 첸 박사는 사람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열정을 촉발시키는 특정 조건을 정리했다. 두 유형의 이름은 개발 이론가(develop theorist)와 적합 이론가(fit theorist)다.


개발 이론가들은 일단 무슨 일이든지 먼저 시작을 한 후에 점차적으로 열정과 몰입도가 상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개발 이론가들은 일의 종류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받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오랜기간 노하우를 쌓아가는 유형이기 때문에 갑자기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개발 이론가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꾸준히 열정이 차오르는 타입이며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그 자체로 열정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적합 이론가들은 자신에게 완전히 딱 들어맞는 일을 찾아야만 열정이 샘솟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력 초반에 직무나 보직이동이 잦아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한다. 여러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통해 마침내 최적의 자리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딱 맞는 분야에서만 열정을 발휘하는 경우에는 어떤 일을 맡느냐에 따라 결과의 편차가 아주 클 수가 있다. 누군가가 A라는 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B라는 일에서는 굉장히 저조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그는 적합이론가일 가능성이 높다. 적합 이론가는 스스로 열정이 샘솟을 수 있는 잘 맞는 직무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서로 다른 두 유형의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추적한 결과 직업에 행복을 느끼는 직업만족도와 일을 우수하게 해내는 업무 성과도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며, 어떤 환경에서 더욱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가를 빨리 알아채느냐의 문제였다.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영어를 가르친 것을 돌아보니, 나는 적합 이론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역시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열정이 샘솟았던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과의 친밀한 관계, 동료 교사로부터의 긍정적인 피드백 등은 더운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상쾌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일을 오래도록 해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 일이 내게 적합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롭다 못해 건방지게 보일수도 있는 나는 관료 조직이라는 경직된 시스템 속에서는 결코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기에 조금은 유들유들해진 부분도 있으나, 효율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소통 방식, 형식만을 위한 형식, 조직 내에서의 세력 다툼, 꼰대같은 상사 따위를 견디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한 때 그저 해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 복지 기관의 총무팀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8개월간의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나온 순간, 나는 자유를 느꼈다. 딱히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일을 잘 하는 것도 아닌 희한한 직원이었던 나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글 쓰는 일은 힘들다.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생각을 정제하는 과정은 가끔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금새 유려한 표현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천재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멋진 표현이 떠올라 휴대폰 메모장에 적으려는 순간, 사랑스럽기 짝이없는 두 아이가 다가와 "엄마는 왜 맨날 글만 써!"라고 고함을 친다. 분명 조금 전까지 같이 놀다가 정말 아주 잠시 폰을 켠 것인데 말이다. 억울해도 별 수 없다. 머리 속을 강타한 멋진 표현은 이미 증발되었기에,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사탕을 하나 꺼내들 뿐이다.


이토록 어렵고 힘든 글쓰기 역시 나에게 적합한 일이었기 때문에 2년을 꾸준히 써올  있었다고 생각한다.  것의 이야기들이 순도 높은 다이아로 변환되는 과정은 굉장히 더디다. 뜨거운 열기와 정을 맞는 일도 견뎌야 한다. 책상 앞에 앉은 내게 아이들이 매달려 키보드 자판을 마구 두드리고 백스페이스를 무자비하게 눌러버릴 때도 이겨내야 한다.  모든 과정을 버티고 버티다 보면,  앞에 눈부신 다이아처럼 빛나는   편이 놓인다.  빛은  세상을 환하게 비추지는 못하지만, 내가 앞으로  걸음  내딛을  있게 나의  앞을 환하게 비춘다.


어렵고 힘든 글쓰기의 끝에는 달콤한 보상이 있다.  편의 글을 쓰고 나서 느끼는 희열, 마음에 드는   편이 주는 기쁨,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멋진 댓글들.  모든 것이 글쓰기의 보상이며 글쓰기의 달콤함이다. 나의 글이  통장에 꽂히는 돈이 된다면  역시 꽤나 달콤할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일단 차후의 문제다. 세상에 기쁘기만 하고 즐겁기만  일은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이어도 어려울 때가 있고, 세상 모든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을 견디게 만드는 ,  힘이 바로 진정한 열정이다. 힘들고 어렵지만 지금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나의 일들은, 전부 내겐 너무 좋은 당신이다.


Most men lead lives of quiet desperation and  
go to the grave with the song still in them.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다가
가슴 속에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노래를 품고 죽음에 이른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의하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끝없이 자기 자신만의 노래가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노래들을 다 부르고 살 수는 없기에 우리에겐 언제나 오늘이 중요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부를  있는 노래가 있다면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기꺼이 목청을 가다듬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 부를  있는 노래다. 내가 지금 부를  있는 노래는 오전에 글쓰고 오후에 수업하고 저녁에는 육아, 늦은 밤에는  글을 쓰는 일이다.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흥겨운 캐롤을 따라 부르며 2021년과 멋지게 헤어지자. 새해에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걱정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노래하며 사는 삶을 꿈꾼다.  글을 읽는 모두에게 진정한 열정이 샘솟길 바라며. 진정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며.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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