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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Nov 20. 2021

오늘도 잘 가꾼 것 같다

따끈한 앤작가님 소식 전하러 오늘 쓰고 오늘 발행합니다^^

토요일 아침, 큰 아이 울먹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침 일찍부터 체육대회 음향 지원을 나가야 하는 남편의 인기척에 어젯밤 일찍 잠들었던 아이가 덩달아 기상한 것이었다. 아빠에게 매달려서는 출근하지 말라고 투정 부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동안, 남편은 무사히 출근을 했다. 점심 먹을 때쯤 아빠가 돌아오면, 멋진 작가님 만나러 부산에 가면 어떻겠냐고 오두방정을 떨었더니 아이 기분이 금세 풀렸다. 너처럼 멋지고 착하고 씩씩한 다섯 살 어린이를 만나면 작가님이 너무 예뻐서 깜짝 놀라시겠다며 MSG를 가득 뿌리니 아이가 씨익 웃었다. 연이어 기상한 둘째와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옷을 꺼내 주고, 토끼머리를 해달라는 아이들 요구대로 야무지게 양갈래로 꽁꽁 묶어주었다.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하신 앤 작가님께서 부산 망미동 망미 골목 북마켓에 등장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가봐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멀디 먼 서울도 아니고, 같은 경상권에, 심심하면 해운대로 드라이브할 겸 출동하는 나는 부산 망미동쯤이야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아닌가 싶었다. 꼭 가겠다고 미리 전화를 드리면서 유쾌 통쾌 상쾌한 작가님 목소리에 더 설레고 있었다. 일찍부터 일하러 나갔다 오신 남편의 피곤한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해져서, 운전은 내가 할 테니 가는 동안 눈 좀 붙이라며 큰 소리를 떵떵 쳤다.  


큰 소리는 떵떵 쳤는데 장산터널이 보일 때쯤, 나는 노곤해지고 있었다. 11월 말의 날씨 치고는 따스했던 햇살과, 조수석에서 졸고 계신 남편과, 뒷좌석에서 꿀잠을 자고 있던 아이들 덕에 너무나 고요했던 차 안이었다. 잠자기 딱 좋은 환경에 때마침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남편이 깼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눈을 뜨자마자 남편은 카카오 네비가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네비를 자처한다. 광안대교는 안 탈 거니까 우측으로 붙어라. 중간 라인에서 가는 게 좋다. 나 사실 오래 잔 거 아니고 잠깐 졸았다. 진짜다. 등등. 잔소리 아닌 잔소리 폭격에 나는 경상도 아주머니답게 "아랐따." 무뚝뚝한 대답을 내뱉었다. 잠은 어느새 싹 달아나 있었다.  


망미동에 들어서서 수영강을 끼고 달렸다. 왼 편으로 협성 르네상스 아파트가 보였고 오른편에는 폴 킴 콘서트, 거미 콘서트, 뮤지컬 시카고 등의 광고 플래그가 나부끼고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망미 골목 비콘 그라운드, 잠든 아이들을 깨워 킨더 초콜릿을 먹였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는지 입을 오물거리며 신난 아이들. 주차는 남편에게 맡기고 북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은 아담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독립출판물은 어느 쪽인지 휘휘 둘러보다가 왠지 앤 작가님 같은 아우라의 여성분을 찾았다. 책에 싸인 중이신 작가님 앞에 서서 긴가 민가 하다가 보라색 책 표지를 보고 제대로 찾았다 실감했다. 전화 통화도 하고, 카톡으로도 별의별 말을 나눴던 작가님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양윤미... 작가님? 어머어머~~~~!!"




작가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직접 포장해두신 사탕과 캐러멜도 감동이었다. 힘주어 악수를 하고, 꼭 끌어안았다. 얼마나 반갑고 좋던지. 카톡이나 SNS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은 있지만, 직접 실물을 뵌 건 앤 작가님이 최초였다. 키도 훤칠하게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하신 앤 작가님은 아우라가 비타민 그 자체였다. 북마켓과 근처 플리마켓을 잠시 둘러보고 돌아왔더니 작가님 책은 어느새 완판 되어 있었다. 독립출판물 수익금은 모두 기부하신다니, 마음까지 천사셨다.


얼떨결에 작가님의 동생분과도 인사를 했고, 작가님의 언니분께서 직접 그려주신 엽서도 받아왔다. 사탕을 마구 깨물어 먹다가 목에 걸린 둘째가 울음을 터뜨리고 큰 아이는 당장 간식을 사러 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나는 얼른 인사를 드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차로 돌아갔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는데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짧고 아쉽게 만나서, 금세 또 보고 싶어졌다.


나와 남편은 사실 바로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일주일에 딱 이틀 있는 두 딸과 함께 하는 네 식구의 황금 같은 주말이 아닌가.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부산의 키자니아에 들렀다. 세 시간 동안 열심히 직업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흡족해 보였다. 하루의 마침표를 찍어도 될 듯한 일곱 시 반, 우리는 경찰관 체험을 끝으로 겨우(?) 키자니아를 나설 수 있었다.   





앤 작가님의 책 "일상을 잘 가꾸고 싶은 사람"이란 독립출판물의 에필로그에 있는 말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오늘 내가 보낸 일상이, 바로 잘 가꾸어 보려 애썼던 대견스러운 일상이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다. 그냥 그래서 좋은 밤이다.



너무 먼 곳을 바라보며 멀리 가지 않으렵니다.
두루뭉술하면 어떻습니까.
지금 눈앞에 놓인 일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고 싶습니다.
보통의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고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어요.
마음이 하고 싶은 말 중 절반만이라도 옮겨져 책으로 나오길 바라면서요.

-일상을 잘 가꾸고 싶은 사람, 앤셔어리 산문집 epilogue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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