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Jun 19. 2022

텅 빈 지갑이 되자

유월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텅 빈 지갑이 되자    / 양윤미



텅 빈 지갑이 되자


부끄럽고 초라해지자


돌밭이 되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자


말라비틀어지자


쪽팔리게 구걸하자


빚만 잔뜩 지자

.

.

.

사랑만 갚고 살게





(이 시는 Connect to 예술가 단체 소개전시회에서 공개한 신작시입니다.

6/30일이면 전시회가 끝나는데, 브런치에도 공개하고 싶어 업로드 합니다..^^)







5월 말에는 참 분주했다. 6월 한 달간 진행되는 예술가 소개전의 작품 전시 방향을 오랫동안 고심했고 머리 속으로 아주 분주한 시절이었다. "양윤미"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소개 전시회이기에, 심혈을 기울여 출산(?)하게 된 <오늘이라는 계절>시집과 작가의 시 세계를 보여주겠노라는 가닥을 잡았다.


전시가 끝난 이후에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릴 소품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에 환원 될 소품들을 사고 말겠다는 욕심이 앞섰지만, 현실으로 불가능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타협을 했다. 가벽에 부착할 시는 재활용 되는 튼튼한 하드보드지와 켄트지에 인쇄하였고, 계절감을 나타내기 위해 구입한 소품들은 버리지 않고 나중에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전시를 위해 작품과 소품을 싣고 전시장으로 갔던 날, 단체전에 함께 참여하시는 회화 작가님들도 와계셨다. 그분들이 수평기를 띄워두고 그림을 거시는 동안 나는 가벽에 글루건으로 소품을 붙였다. 큐레이터님께서 다칠수도 있다 하시며 장갑을 가져다 주셨다. 하지만 장갑을 낀 손이 어색해 벗어던졌고, 그 덕에 나는 영광의 상처(?)를 하나 얻게 되었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겨우 봄과 여름 파트를 완성하고 버벅대고 있었다. 설치를 마무리하신 작가님들이 도와주시겠다며 글루건을 대신 잡으셨다. 겨울 파트에 대해서는 약간의 조언도 해주셨다. 새하얀 가벽에 아이보리 눈꽃송이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하시며, 눈꽃송이를 색칠하자고 하셨다. 두 분이서 갤러리 바닥에 비닐을 깔고 앉아서 그라데이션을 넣는 모습을 보자니,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전시가 시작되고 한 주 후에, 전시회 참여작가들의 작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미리 질문지를 받고 대답을 적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마이크를 달고 카메라 앞에 서려니 닥살이 돋고 소름이 끼쳤다. 너무 긴장한 듯 했지만 감사하게도 대답을 줄줄 외워 말하다 보니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눈물이 나오던 부분도 있었다. 글을 써왔던 여정에 대한 질문이 그랬다. 꾸준히 글을 적어온 시간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글을 쓰기 싫다고 발악(?)하던 나를 붙잡아 주셨던 작가님, 글같은 거 왜 적냐며 이제는 때려치겠다는 헛소리를 하던 날, 정신줄을 붙잡아주셨던 작가님, 아무 성과도 없는 것 같아 자기 비하에 시달리던 순간에 나의 글을 통해 힘을 얻는다며 산소호흡기 달아주신 작가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댓글로 마음을 표현해 주시는 많은 분들, 아내인 내가 글을 쓴다며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조용히 아이들을 씻기고 재워주었던 남편(물론 시간을 정해서 적으라며 잔소리 한 것은 안비밀), 가능성을 크게 보고 언제나 응원을 주던 친구들과 지인들.  


세상의 크고 작은 성취 속에는 멋진 결과를 얻도록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어떤 성취도 오롯이 한 사람 혼자 이루어낸 것은 없다고 믿는다. 연말 시상식장과 여러가지 대회에서 수상자들이 Thanks to를 표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의 선한 배려와 도움 덕분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내게 된다. 시기 적절하게 만난 스승이나 동료 덕분에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는 크고 작은 성취는 결코 나 홀로 만들어낸 업적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인물이 되기 전에 사람을 겪고, 사람에게 배우고, 사람 덕분에 지혜로워진다. (힘들었던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얼마 전에 종영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미정이가 다다르게 된 "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상태, 그것이야말로 실로 대단한 성취다.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은 기분, 느낄 게 사랑 밖에 없는 꽉 찬 마음으로 웃는 그녀는 환하게 빛났다. 그래서 텅 빈 지갑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추앙하는 사람이 되어 추앙 받는 과정은 다 의미있다. 가득 가득 채워 주고, 가득 가득 채움 받는 것이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하면서도 거칠게 사랑과 은혜를 갚으며 살 것이다. 갚을 게 사랑밖에 없는 순간은 얼마나 성스러운가! 내게서 흘러 넘치는 것이 감사여서 참 감사한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주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