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 전쟁의 서막

아유, 진짜 호르몬 때문이었다니까.

by 양윤미

연애시절 나와 남편은 힘닿는데 까지 아이를 낳아 대가족을 이뤄보자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연년생을 낳아 키우며 몸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지금 그때의 농담을 떠올려보니 아찔하다. 미혼에 무자식이었던 우리는 얼마나 무지몽매했는가.

아이가 태어나면서 초보 엄마 아빠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육아라는 정글 속에 떨어진다. 엄마와 아빠는 말 못 하는 아이의 필요를 알아채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판별해내야 하는 숙명의 길에 들어선다. 세상 하나뿐인 소중한 내 아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때가 가장 천사 같고 예쁘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전쟁과도 같은 육아 정글 속에서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부부의 의견이 다르다든지, 감정이 상하는 날은 참패한다. 부부가 두 손을 맞잡고 공조라도 해야 본전이라도 건질 수 있는 것이 육아의 길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전신마취와 제왕절개로 겨우 출산한 나는 조리원에 있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 눈에 띄게 더디 회복했다. 부기가 빠지지 않았고 통증도 심했다. 집에 돌아와서 두세 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돌본 힘은 팔 할이 정신력이었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퇴근길에 내가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사 오곤 했다. 오자마자 내 손에 간식 봉지를 쥐어주었고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딸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워했다.


그 시절 남편 얼굴에는 “아빠라서 행복해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빠랑 딸이랑 붕어빵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헤벌쭉 웃으며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기쁨에 벅찬 남편과 그 품에 안긴 작고 여린 딸을 바라보며 함께 웃었고 하루의 고단함을 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들이 이렇게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나는 사실 첫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삼단 콤보에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임신 중기부터 반지를 낄 수 없게 퉁퉁 부어올랐고 밤에는 잠도 잘 못 잤다. 응급 제왕절개 후 수면상태에서 깨어나 아이는 괜찮냐며 울던 순간은 여전히 생생하다. 조리원을 퇴소해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가 울 때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당시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가장 자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여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 정말 모르겠어!”
“하....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어떡하지?”

육아 초보 무지랭이 엄마 아빠의 입에서는 모르겠다는 말이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서로 상반된 육아 팁을 찾아온 날이면 무식자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 의견이 더 낫다며 끝나지 않는 토론을 벌였다. 그래도 아이가 우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잠자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고 버틸 힘이었다.

지금에야 깨닫지만 육아가 좀 더 쉬워지는 비법은 내 삶의 동반자를 측은히 여길 줄 아는 곱디 고운 마음이었다. 물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환경 같은 다른 조건들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들보다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이 바로 부부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자녀들을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부모가 키우며, 행복한 부모는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이토록 단순 명료하고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날카롭고 예민했던 시절의 나는 낯 뜨겁지만 출산 이후의 호르몬 변화 때문에 그리도 뾰족했었노라 핑계를 대고 싶다.

남편은 종종 새벽에 눈을 뜨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새벽 수유를 해주곤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먼저 싱크대를 확인했고 젖병을 씻어서 소독한 뒤, 잠시 한 숨 돌리고 있는 나에게 오늘 하루의 기분이 어땠는지 별 일은 없었는 지를 물었다. 당시 나는 육체의 통증과 육아의 고단함에 파묻혀 있었기에 자상하고 따뜻했던 이 남자의 배려에 무심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고 나는 그의 사려 깊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의 아빠인데 그 정도는 당연하지 않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보, 나 너무 힘든데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저것도 좀 해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꽤나 무거워진 아이를 아기띠로 안아 재우고 있었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조심스레 아기띠를 풀고 숨까지 참아가며 살포시 눕히려고 하는데 등 센서가 켜진 아이가 엉엉 울었다. 다시 아이를 안아 올려 재우면서, 내려놓으면 울고 내려놓으면 우는 아이와 지루하고 갑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살 없는 감옥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지치고 힘든 그 순간 거실 소파에 편히 앉아 있을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 우는 소리가 들리면 들어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아이는 부모가 함께 보는 건데 왜 나만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억울해졌다. 그리고 한순간의 객기로 마무리됐던 육아 대첩 첫 번째 에피소드, 전쟁의 서막을 알리러 비장한 얼굴을 한 채 거실을 향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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