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 전쟁의 발발

칼을 뽑았으니 다시 칼집에 집어넣자.

by 양윤미

남편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지난밤 잠을 설친 그의 까칠한 얼굴을 보고 순간 불타오르는 전의를 상실할 뻔했으나, 이왕 칼을 뽑아 들었으니 무라도 베야한다는 심정으로 돌격했다.


“서현이가 잠을 못 이루고 이렇게 우는데 한 번이라도 들어와서 괜찮은 지 물어봐줘야 하는 것 아냐?”


남편은 나의 기습 공격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고 화가 난 내 얼굴을 보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아이를 눕히다가 깨우는 비율은 남편이 월등히 높았고 그래서 보통은 내가 재우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번은 남편이 아이를 본인이 재우겠다고 자처한 적이 있었지만 도리어 더 잠을 깨우고 마는 아이러니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내가 어떻게든 재울 테니 그동안 차라리 쉬거나 다른 일을 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화를 내고 있으니 본인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서현이 재우는 중에 들어오면 방해되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했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몇십 분째 갑갑한 방 안에 갇혀서 애는 울지, 나는 힘들지,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당신은 내 걱정도 안 돼? “

“아니 그러니까 애초부터 감당도 못할 거 뻔히 보이는데 왜 혼자 총대를 메겠다고 난리를 쳤어?”

“그래도 너보단 내가 나으니까 그렇지! 너는 잘 못 재우잖아! 잠은커녕 애는 맨날 깨워놓고!”

“뻔히 힘들 게 보이니까 내가 대신 재우겠다고 몇 번을 말했어? 아니 무슨 사람이 이렇게 불나방 같아? 결국 못 버티고 이렇게 폭발할 게 나는 안 봐도 비디온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아니, 그럼 본인이 재우겠다고 설득하시지 않고 뭐하셨어요? 왜 이제 와서 내 탓이세요?”

“네가 내 말을 잘도 듣겠다! 하……. 여보, 나는 애가 안자도 당신처럼 그렇게 힘들진 않아, 안 자면 좀 있다가 재우면 되는 거고. 아니, 애가 로봇도 아니고 어떻게 먹고 자는 일정을 매일 칼같이 지키냐?”

“누가 로봇처럼 칼같이 지키라고 강요하냐? 한두 시간 차이는 나도 먹을 때, 잘 때 어느 정도 기준은 잡아두고 아이를 봐야 할 거 아냐! 오늘도 이미 자야 할 시간 한 시간이나 지났거든?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하더라도 하루 일과에 큰 변동은 없도록 도와달라고 했잖아!”

“도와주잖아! 누가 안 도와줘? 진짜 서운하다. 누가 들으면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한 줄 알겠다. 젖병 소독 누가 하는데? 새벽에 당신 못 일어날 때 수유며 기저귀 가는 거며, 내가 얼마나 많이 도와주는데! 오늘도 그래. 당신이 나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해놓고 갑자기 나와서는 신경도 안 쓰냐고 화를 내고.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건데?”

“이럴 땐 이 장단! 저럴 땐 저 장단! 센스 있게 맞추라고!”


나의 포효 같은 고함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남편은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다. 초여름의 어느 날, 안 그래도 더운데 열 받아서 더 더워진 나와 남편은 한동안 씩씩대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물주가 만들다가 센스를 빠뜨리고 안 넣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 남편은 본인이 결코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외치며 시위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이미 정신 줄을 끊고 전장으로 돌격했던 나는 갑자기 서러운 마음에 울컥했다.

“몸도 힘든데, 예방접종 말고는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아이랑 집에만 있으면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도 차라리 당신처럼 출근하고 싶어! 차라리 나가서 일하고 싶어. 당신처럼 일하러 갔다가 퇴근해서 잠시 잠깐 아이 보고 싶어. 애 예쁘지 않냐고? 예쁘지 왜 안 예뻐. 내 새낀데 당연히 예쁘지. 근데 예쁜 만큼 힘든 걸 어떡해? 내가 힘들다고, 너무 힘들다고.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나는 그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팔 할의 정신력을 잃어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것 마냥 눈물이 뚝뚝 흘렀다. 못난 얼굴에 눈물까지 질질 흘리며 더 못나진 나를 바라보던 남편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며 외쳤다.


“알겠어! 그럼 나가! 나가서 당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이제 일도 알아보고, 취업해! 그럼 되겠네, 애는 내가 볼 테니까 이리 줘!”


남편은 순식간에 아이를 뺏어 들고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 닫힌 문 너머로 본인이 사업을 다 접고 집에서 전업으로 아이를 볼 테니 네가 일 하러 나가라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나는 순간 흐르던 눈물을 닦고 남편의 음향 기기들을 죄다 팔고 사업자 대출을 갚은 뒤 내 이름으로 사업을 벌이는 상상을 하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사업 아이템은 뭐가 좋을지 생각하다가 문득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닫고 곧 정신을 차렸다. 내 품에서 파닥거리던 서현이는 남편이 데리고 들어가 버렸고 문을 열어도 남편이 나보다 힘이 세니 열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싸울 대상을 잃어버린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싸움은 끝이 있어야 하는데 똥 싸다 만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베란다 창문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가서 끝나지 않은 싸움의 결판을 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잘 있나 보자! 나는 갈게! 애가 안자도, 안 먹어도, 계속 울어도 나보다 덜 힘들다며? 좋은 하루 보내라!”


현관을 쾅 닫고 내려와 차를 탔다. 오전 낮잠 재우기에 실패하고 싸우다 나왔으니 아직 벌건 대낮이었다. 차는 선팅이 오래돼서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보였고 민낯에 머리도 안 감고 심지어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온 나는 혹시나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눈이 마주칠까 민망했다. 이 꼬락서니로 누굴 만나기도 그렇고 드라이브를 가자니 운전할 컨디션도 아니었다. 전화를 걸자니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나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동안 핸들에 얼굴을 파묻고 잠자코 눈물을 훔쳤다. 내 안위가 가장 중요했던 우리 엄마도 너무 보고 싶고, 엄마 품에 안겨 그저 힘들다고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다 땡볕에 달궈지던 차 안이 너무 더워서 더 이상 울 수가 없었다. 지지리도 못난 꼴을 한 채 나는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틀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머리카락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누굴 만나더라도 이런 기분으로 나가봐야 제대로 놀 수도 없을 것 같고, 어차피 내 얼굴에 침 뱉기인 남편 욕도 하기 싫어졌음을 깨달았다. 남편 말도 사실 일리가 있었다. 종종 남편은 내게 불나방이라고 했다.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하루 만에 다 적겠다는 이상한 목표 설정을 했을 때도, 뭔가에 찔려 타이어가 터졌는데 당장 세울 생각은 안 하고 조금만 더 가면 주유소라며 직진했을 때도, 모처럼만에 쉬는 남편에게 사우나에서 실컷 쉬다오라며 혼자 대청소를 하겠다던 날도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성적표 문구를 복사해서 붙여 넣기 싫었던 나는 좀 더 창의적인 멘트를 고민하다가 새벽까지도 끝내지 못한 채 기절하다시피 잠들었고, 터진 타이어로 주유소에 도착했을 때는 하마터면 차체를 견디지 못하고 타이어 휠이 찌그러지기 직전인 상태였으며, 대청소를 하던 그 날은 탈진해서 마무리도 못한 채 결국 드러눕고 말았다. 그의 눈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혼자 해내겠다고 떼쓰며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아이를 쉽게 재우기 무리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저 웃으며 남편에게 교대를 부탁했어도 이렇게는 안 싸웠을 텐데. 금방 자아성찰을 마친 나는 똥 싸다 만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풀기 위해 싸우다가 방안으로 도망간 남편을 찾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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