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더 넓고 더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안아주자.
현관의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남편은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살짝 안도하는 듯했다. 남편 역시 혼자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며 큰소리는 땅땅 쳤어도 마음은 불편했던 것이 틀림없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나도 남편도 찝찝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멀뚱히 서 있다가 나는 괜히 멋쩍어서 서현이는 자느냐고 물었다.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그는 퉁명스럽게 잔다고 대꾸했다. 내가 재울 때는 빽빽 울어대면서 안 자놓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평온하게 잠들 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설마, 아빠와 엄마가 다투는 시끌시끌한 고함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나라로 간 것은 아니겠지. 갑자기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부부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남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딸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남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찍이 놓여있는 식탁의자에 가서 앉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 꽁꽁 얼어버린 분위기를 깰만한 적당한 말을 고르느라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는 중이었다. 감사하게도 살얼음판 같은 정적을 깨 준 것은 남편이었다.
“좀 더 놀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지. 왜 일찍 왔어? 애 보는 거 힘들다며?”
“여보, 당신 같으면 이 꼴로 어디 가서 놀겠어? 잠옷에 슬리퍼에 머리는 안 감고. 더워서 땀도 흘렸더니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나는 괜히 심통을 내며 대답했다. 여전히 화난 얼굴을 하고 있던 남편은 냄새 맡는 시늉을 하던 나를 흘깃 쳐다봤다. 못난 얼굴로 킁킁거리던 내 모습은 정말로 웃겼다고 한다. 그는 피식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참느라 코를 벌렁거렸고 입을 씰룩거렸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불과 몇 십분 전의 날 선 대립은 꽤 오래된 과거의 일인 것만 같았다. 시한폭탄이 폭발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워놓고 우리는 그렇게 금세 마음이 풀려 웃었다. 그리고 남편은 적당히 힘들 때에 적당히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습을 해보자며 길고 긴 일장 연설을 베풀었다. 철없는 사춘기 아이처럼 화가 나서 집을 탈출했던 나는 아름다운 화해의 분위기를 타고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싸움을 종결시켰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출산 이후의 삶은 적응하는데 꽤나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 엄청난 과도기에 우리도 여느 부부처럼 엄청난 몸살을 앓았다. 아이의 필요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긴장해 있었고 내 몸이 보내는 휴식 신호에 무감각했다. 나를 버티게 하던 팔 할의 정신력을 잃고 날뛰던 날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쉼이 필요했었던 순간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칠 때는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잠시 로그아웃하는 것이 좋겠다던 남편의 당부는 피곤해서 자주 화를 내던 나를 지켜보며 깨달은 통찰이었다. 공들인 만큼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중시했던 나는 애를 쓴 만큼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노력한 것조차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육아의 길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고 싶은 일, 해 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말던 나의 불도저 같은 성격도 육아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육아의 삶은 어떻게 하면 힘을 덜 쓰고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해도 괜찮을 수 있는 무던함,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도 언젠간 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 계획대로 되기는커녕 모든 예상을 뒤엎고 엉망이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여유와 무던함이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결코 지름길을 택할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속도를 늦춰야 하기 때문이다. 성격 급했던 나는 남편에게 별 거 아닌 일로 화를 내고 다투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쉬어가는 법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아이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여유를 터득했고 그 모든 좌충우돌의 순간을 든든하게 기다려주었던 나의 동반자, 남편에게 감사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데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마는 모순적인 부부싸움은 사랑하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소중한 아이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피곤하거나 지쳤을 때 싸울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치로 알아챈 우리 부부는 각자 무리하지 않기로, 그리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도록 약속했다. 그 이후 우리는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상대가 혹시나 땅 속에 동굴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얼굴이면 좀 쉬는 게 좋겠다며 휴식시간을 철저히 보장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쓸데없는 싸움을 줄여나갔고 이전보다 훨씬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이제 널브러진 옷가지와 기저귀 뭉치들, 장난감이 흩뿌려진 난잡한 거실에 누워 잠시 눈을 감을 수 있는 융통성이 생겼다. 어쩌면 융통성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한 해 한 해 먹어가는 나이 덕에 치울 힘도 없어지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때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좋아하는 디저트를 사 먹고, 내 취향의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하기도 한다. 나의 소중한 휴식 시간은 부부싸움을 피하게 해 줄 여유를 갖게 할 뿐 아니라 좀 더 넓고 좀 더 깊어진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를 보듬어 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일상의 작은 틈을 타서 쉼을 누리는 법을 깨닫고 나니 아이는 어느새 혼자 앉기를 터득하고 있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엄마와 아빠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부부가 서로를 잘 키워간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육아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 모두가 함께 자라 가는 삶이 아닐까. 아이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싸웠던 많은 날들이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내 아이가 수없는 도전 끝에 겨우 균형을 잡고 앉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엄마 아빠도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겨우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노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언젠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쉼의 유익을 누리는 것을 통해 피할 수 있는 싸움을 피하고 사랑하는 내 가족을 더욱 큰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잘 쉬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