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이야기 - 1

용감한 청춘이었던 그 시절, 열정이 참 대단했지.

by 양윤미

내가 내 인생 처음으로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2012년에 만난 예쁜 마음을 가진 친구, Sunny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건강하고 씩씩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순항하고 있었던 자신의 삶에서 갑자기 추락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과 고통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날벼락같이 불치병을 진단받았다. 그녀는 말라갔고 치료는 고통스러웠으며 오랜 입원 기간 끝에 다행히 면역을 회복했으나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재발한다는 무서운 예언과 함께 퇴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하루 하루의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병원 생활 속에서 그녀는 노래 가사를 적었다고 했다. 그리고 음악을 잘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코드를 붙이고 멜로디를 만들어 자신의 병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을 향한 애정에 대해 노래했다. 그녀는 그렇게 아픔 속에서도 멋지고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엇다. 그리고 넌지시 나에게 용감한 청춘의 삶을 언니도 함께 하지 않겠냐며 손을 내밀었다. 뭐든 할 수 있는 게 청춘 아니냐며 나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자며 주저 없이 그 손을 덥석 붙잡았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귀 기울였고, 서로를 응원했다. 이미 자작곡 여러 개를 만들어둔 그녀는 언니의 노래도 만들어 보자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던 후배 찬스로 음대 연습실에 자리를 잡고 창작의 '창'자도 모르면서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다. 나는 화성악을 배운 적도 없고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은 무식자다. 나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영어 강사였고 그저 피아노와 기타 정도는 칠 줄 아는 음악 애호가 수준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작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자신의 아픔을 엮어 노래를 만들었다는 Sunny가 너무 멋있어서 함께이고 싶었고, 젊고 혈기왕성한 두 여인의 용감무쌍한 도전들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 추억이 될 지가 기대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만남이 거듭될수록 실제로 내 안에서도 많은 영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너무 아파서 떠올리기 싫었던 어둡고 캄캄한 나의 과거 속에서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내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는 수많은 감정들은 여러가지 표현들로 쏟아져 나왔다. 가사를 적으며 눈물을 흘렸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열정이 불타올랐다.


Sunny는 내가 지어내는 가사를 읽으며 놀라워했고,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멜로디를 붙이고 코드를 짰다. 그녀는 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몇 십 프로 부족했던 나는 악보를 그릴 줄 몰라서 가사를 적고 그 위에 코드를 적은 채 그것을 악보라며 들고 다녔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동시에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던 나는 음대 후배를 반주자로 섭외했다. 후배가 볼 악보를 A4용지에 정성스레 인쇄해서 건넸고 글자만이 난무한 괴상한 악보를 받아든 후배는 조심스레 한 마디 건넸다.

"언니, 이게 악보예요?"

순식간에 우리는 배꼽이 빠져라 깔깔 웃었다. 작사 작곡한 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우스꽝스런 악보를 펼쳐두고 나는 후배 옆에서 열심히 멜로디를 읊어 주었다. 착하디 착한 후배는 발로 쓴 악보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세상 하나뿐인 자작곡을 서서히 익혀갔다. 그 와중에 너무나 다행인 것은 Sunny의 악보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와 Sunny는 콩나물 대가리 하나 없고 가사와 코드만이 난무한 악보를 들이대며 무식하고 용감하게 피아노 전공자 한 명의 귀한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 다음 연습 모임을 위해 나는 나름 악보를 보완했다. 가사 밑에 계이름을 색깔별로 예쁘게 적은 것이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용감한 청춘기를 보내던 두 여인은 노래가 하나 둘 쌓이자 작곡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들의 절망스런 삶에서 건져올린 빛나는 노래들을 관객에게 직접 불러주기 위해 일을 키웠다. 추진력 강했던 나는 가깝게 지냈던 학교 선배의 지인이 운영하는 까페를 찾아갔다. 까페 사장님에게 나는 그저 건너 건너 아는 처음 보는 학교 후배일 뿐이었다. 처음 만나는 철없는 후배였던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뜸 까페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장님은 내게 노래 실력을 보여 달라 하지도 않았고 장소의 대관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사장님은 그저 까페에 비치된 피아노를 잘 쳐주고 좋은 공연을 해달라며 웃으셨다. 나는 너무 기뻤다. 사장님이 나와 Sunny의 악보에 글자와 코드만 난무한다는 것을 모르셨기에 너무 다행이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나를 믿고 우리의 공연을 허락해 준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공연을 잘 해서 손님들을 북적이게 만들겠다는 앙큼한 목표를 세웠다.


장소도 정했고 노래도 몇 곡 준비되었고 우리는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어떻게 짤 지 계획했다. 까페에는 피아노만 하나 놓여 있었고 피아노 연주자, 기타, 기타 연주자, 마이크와 엠프, 그리고 믹서 및 그 모든 것을 운용해 줄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때마침 음향 엔지니어였던 후배가 떠올랐다. 나는 이 공연을 통해 나오는 수익은 전혀 없으며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혹시 장비를 가끔 빌려써도 되겠냐고 또 한 번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물어봤다. 될 일은 된다고 했던가, 후배는 신기하게도 까페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나를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맛있는 밥과 커피는 얼마든지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기타 실력이 좋았던 후배에게 이왕 도와주는 거 가끔 기타리스트로 공연도 함께 해줄 수 있냐며 떠 보았다. 부업으로 기타와 드럼을 가르치고 있었던 후배는 그 또한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수락하였다. 나는 후배가 좋아한다는 생크림이 가득 올라간 커피 한 잔을 사주었다.


나는 노래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퇴근 후 까페 공연을 위한 연습이랍시고 Sunny와 함께 그리고 친구들과 후배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열창했다. 나는 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애창곡이 되는 상상을 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상상을 하고 한 번도 꿔본 적이 없는 꿈을 꾸면서 나는 매일을 가슴 뜨거운 하루 하루를 보냈다.


사실 그 즈음에 나는 한 남자와 썸을 타고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남자는 영어 교육 관련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내 직업과 관련이 높아 나는 그의 꿈에 흥미가 생겼고 그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는 만날 때마다 나를 멋진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나중엔 나와 함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앞에서 나는 능력있는 사람이었고 매력있는 여자였다. 그가 꿈꾸는 미래에 내가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연애를 안 한지 오래된 내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말랑말랑한 기분은 꽤나 달콤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꿈꾸던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했던 그가 돌연 해외 파견근무를 간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 있다가 올 지 모르고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예정대로 한국을 떠났고 연락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나는 오매불망 그를 바라보며 기다리고만 있을 정도로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니 떠날 때까지도 이렇다할 말을 하지 않고 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 그는 아침을 맞이했고 그가 잘 시간이 되면 나는 아침을 맞이했다. 자고 일어나면 휴대폰에는 내가 계속해서 보고싶다는 그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러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이고 밥 한 끼, 커피 한 잔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더이상 이어나갈 썸은 없었다. 게다가 공연 준비에 심취해 내 마음은 온통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었고 서서히 그를 향한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더이상 오지 않는 그의 연락에 허전한 건 사실이었다. 장거리 연애여도 관계를 잘 지켜가면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들도 있는데 내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반응한 것이었을까. 오래 기다려야 할 나를 생각해서 선뜻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을 사는 나에게 그는 그저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묵돌 작가의 <어떤 사랑의 확률>에서 말하는 것처럼 서툰 우리에게 사랑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탓에 놓치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하고 소나기에 흠뻑 젖듯이 푹 빠지기도 할 뿐인 것이다. 내가 놓쳤던 사랑, 내가 망설였던 사랑, 끝이 좋지 않았던 사랑, 만나면서 나의 최악의 모습을 마주했던 사랑, 그 모든 사랑이 그 때 그 순간에는 사랑이었고 지금 이순간에는 지나온 과거가 된다. 그는 한 때 나를 설레게 했던 짧은 사랑의 과거가 되어 지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노래를 향한 열망으로 하루하루가 가득차 있었다. 그 뜨거운 열망은 내가 꿈꾸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다시 예고없이 찾아오는 소나기 같은 사랑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사랑의 고백을 하고 싶은 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두려움 없이 걸 수 있는 사랑,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서로가 가진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내주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내 곁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 기쁜 일에 얼싸안고 뛸 수 있고, 슬픔에 잠겨 울 때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지척에 있는 사람이길 원했다. 내가 승승장구할 때만 신이 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프고 약해지고 도움이 필요해지는 순간에 기꺼이 나를 위해 희생해줄 수 있는 참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고 싶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소나기에 내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전하는 마음으로 나는 "고백"이란 노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