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울산의 별> 리뷰
얼마 전, 제27회 부산 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과 한국 영화감독조합상을 수상한 작품 <울산의 별>을 봤다. 제목에서 ‘별’이란 단어의 의미가 은근슬쩍 짐작되었다. 울산이라는 공간이 등장하고 지역 발전에 큰 원동력이었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별, 그 "별"이라 함은 당연히 주인공인 그녀, 윤화일 테다.
영화의 주인공 윤화(김금순 님)는 조선소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의 동료들은 그런 윤화를 가엾게 여겼고, 험한 일이긴 하지만 용접공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녀를 도왔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먹여 살려온 윤화의 삶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지난날의 서사, 과거 회상 장면에 필름을 낭비하지 않는다. 꼭 알아야 하는 정보 정도만 인물들의 대사로 자연스럽게 유추되게 할 뿐이다. 영화는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오늘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윤화의 씩씩한 코골이 소리에서 출발한다. 낡아빠진 자전거를 끌고 슈퍼에 들러 담배를 사는 빡빡머리 윤화는 누가 봐도 남자로 보인다. 오래 알고 지낸 슈퍼 주인이 윤화의 갱년기를 걱정해 주는 듯한데, 윤화는 자기 몸의 변화나 자기 마음의 상태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고함을 친 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출근할 뿐.
- 정리해고
“왜 낸데?”
“시스템이 그렇다 안카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일터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이, 조선소 기장은 윤화에게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시스템을 언급하는 기장은 마치 악역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스템이라 함은 회사의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겠으나 자본주의 시스템처럼 들리기도 했고, 서글프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고된 일로 인해 이미 몸이 성치 못한 윤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순간적인 작업 실수로 뜨거운 쇳물에 손을 다치고 만다. 결국 병원을 찾아간 그녀, 윤화의 다친 손을 포함하여 몸 상태를 염려하는 의사(이상일 님)의 말에도 윤화는 약만 잘 챙겨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 대왕 오징어와 자전거
윤화와 윤화의 삶에 대한 메타포, 영화적 장치로 감독은 늙은 대왕 오징어와 낡아빠진 자전거를 사용한다. 조류에 맞설 힘이 없는 늙은 대왕 오징어 한 마리가 조선소로 밀려 내려온 날, 직원들은 안주 삼아 먹자며 신이 나지만 윤화만 홀로 썩은 표정이다. 남편 기일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술을 권하는 동료들을 뿌리치며, 남편 제사라고 쌀쌀맞게 대꾸해 버린 덕분에 떠들썩한 분위기는 돌연 숙연해졌다. 어쩌면 윤화는 파도를 헤치고 나아갈 힘이 없어서 살을 뜯어 먹히고 마는 늙은 대왕 오징어에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바다낚시 장면은 클라이맥스 그 자체였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윤화가 무력하게 주저앉아 오열하던 장면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말을 들은 후, 하루하루가 절박한데,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마저 도둑맞자 윤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친한 직장동료 태민(임정민 님)은 얼마 전에 새 차를 뽑았는데, 자신은 낡아빠진 자전거마저 도둑을 맞았으니 어처구니없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이었을 때부터 함께한 손때 묻은 낡은 자전거는 윤화의 삶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자신의 삶을 도둑맞은 기분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런데, 자전거를 훔쳐간 범인은 대체 누굴까?
“집이 내고, 땅이 내고, 용접이 낸데,, 왜 내한테서 다 뺏아갈라카는데?”
절규하듯 토해내는 윤화의 대사들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해고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늦은 밤, 홀로 회사 옥상을 찾아간 윤화의 눈 속에서 조선소 풍경과 함께, 용접공 윤화 자신의 삶도 같이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녀가 옥상에서 조선소 깃발을 하나 훔친 게 무슨 대수겠는가. 자신의 몸과 마음은 뒤로 한 채, 20년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왔을 고달팠던 삶이 조선소 깃발 하나 훈장 삼겠다는데.
- 우리들의 형수
“형수, 언젠가는 또 좋은 일 안 있겠나.”
윤화는 조선소에서 직급이나 직책이 아닌 “형수”로 통한다. 윤화의 남편을 아는 직원도, 윤화의 남편을 모르는 직원도 모두 윤화를 “형수”라 부른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니는 내 남편도 모르면서 왜 형수라 부르는데?”라며 응수하지만, 그녀는 직원들에게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가여운 한 여인이자, 가족 같은 사람, 형수다.
영화 속에는 윤화와 조선소 직원들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생은 한 방이라며 빚내서 비트코인 했다가 돈을 날린 아들 세진(최우빈 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울산이라는 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딸 경희(장민영 님), 전근대적인 걸 싫어하면서도 어른으로도 남자로도 살아본 적 없다는 도련님 인혁(도정환 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체득한 남편의 작은아버지 한섭(임형태 님), 그리고 그의 아내 금순(변중희 님)등.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인물들 간의 호흡이 간혹 삐걱대거나 급박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굳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 연출이 담백해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지고, 또다시 별은 빛나고, 새로운 자전거가 또다시 굴러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빛나는 윤화의 얼굴이어서 더욱 좋았다.
우리가 알든 알지 못했든, 눈치챘든 눈치 못 챘든,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안에는 자신의 삶을 소모하고 희생하며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도시의 광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모두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빛나는 별들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가여운 한 여인이자, 형수인 윤화처럼, 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함께 만드는 정책연구소 웹진(3월호)
및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