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시요일 모임
2026년 새해다. 새해가 되고 6일이 지나서야, 작년 12월의 시요일 소회를 올린다. 연말에 이직하느라 바빴던 탓이다.
작년에 일했던 그 학원의 분위기, 시스템, 그리고 동료 강사 및 원장과 너무 안 맞아서 힘들었었다. 빨리 관두지 않았던 이유는, 출산 육아로 쉬다가 오랜만에 시작한 수업이어서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노력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 장소를 잘못 택했다.
내가 잘 하는 일들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고, 내가 하지 않거나 바빠서 놓친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지적질하는 부원장과는 단 하루도 더 일하기 싫었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누군가 그만두면 내 탓으로 몰아갔다. 본인의 실수나 잘못에는 관대했다. 부원장은 내가 그만두는 날까지도 내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 이미 다 눈치채고 있던 원어민 강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She is so~~~childish.” (부원장은 정~~~~말 유치한 사람이야.)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돈밖에 모르는 원장의 태도도 큰 몫을 했다. 문제가 많은 학생들을 퇴원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주구장창 참아달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전화는 피했다. 강사에게 직접적으로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있으면 제명시키겠다는데, 그건 민.형사로 고소를 해야 할 일 아닌가? 수업 시간도 무시하고 숙제도 안하고 책도 안 들고 오고 강사 말도 무시하는 학생을 무슨 수로 수업을 하나? 그러면 다른 성실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나? 학부모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더니, 그들도 다 안다고, 또 참아달라 했다. 원장으로서 기강도 안 잡으면서 말이다. 부원장과 프렙실 담당 강사는 원장 욕을 그렇게 해대면서도, 돌아서서 나에게는 학생들을 고객으로 봐달라고 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곳이었다.
신학기가 아닌 연말에 새로운 영어 강사를 구하는 곳은 별로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정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이 몇 달 쉬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마음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딸들은 하루하루 커가고 교육비며 식비며 이래저래 돈도 많이 드는데 가뭄에 콩나듯이 들어오는 강연의뢰에 원고 청탁만을 의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간간이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할 것인가’가 중요한지라, 맘에 드는 곳이 별로 없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 한 학원에서 시강을 했다. 시강 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면접을 봤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시강비도 받았다. 다음 날,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좀 놓였다. 재밌는 건, 새로 일하게 된 학원의 원장님도 내가 진절머리나게 싫어했던 부원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은 참 좁고 손바닥으로는 결코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 같다. 진실은 때가 되면 드러나기 마련이란 생각을 했다. 아무튼 기존 학원을 마무리해주는 시기와 새 학원에서 적응하는 시기가 겹쳐서 연말에 매일이 행복하게 분주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선생님, 가지마세요.“, ”선생님 덕분에 성적 올랐는데.. .”, “한 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이예요.”하며 안아주던 학생들 때문에 순간 울 뻔했다. 그런 다정한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분주한 와중에도 시요일 연말 모임을 했다.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 12월인 만큼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시 한편과, 새해 소망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날이 너무 추운 탓에 뜨끈한 솥밥집에서 만나 배부터 든든히 채웠다. 여러 번 리필한 반찬은 담백한 시금치, 싱그러운 톳나물, 그리고 상큼 달달한 연근 샐러드였다. 통통한 고등어구이가 뼈만 남을 때까지 기분좋은 식사를 즐기고 근처 까페로 이동했다.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한 분이 갑자기 사다리 게임을 하자고 하셨다. 마음에 드는 동물을 고르면 작은 선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여우를 골랐고 귀여운 핸드크림에 당첨됐다. 가방에서 주섬 주섬 선물 꾸러미를 꺼내던 회원님이 마치 산타인 것 같았다. 그냥, 모두에게 소소하게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박소란 시인의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김경미 시인의 ‘오늘의 결심’, 존 모피트 시인의 ‘어떤 것을 알려면’, 이정록 시인의 ‘의자’ 등이 언급되었다. 새해에는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들을 나눴다.
시를 읽고, 마음을 헤아리고, 삶을 해석하는 순간들이 너무 좋다. 그리고 그런 안목이 있는 분들과 함께여서 행복하다. 내 삶에 이분들을 들일 수 있어서, 내 마음 한 켠에 한 줌 햇살이 될 말을 들려주셔서 고맙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이 많길!, 그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서 원없이 행복한 새해를 보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