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시요일
1월 새해 첫 모임을 준비하면서 상큼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의 시를 고르고 싶었다. 유쾌 상쾌 통쾌하며 즐거운 느낌으로 말이다. 그런데 도무지 바빠서 시를 찾아보고 읽을 짬이 안 났다.
하루하루 스케줄은 스케줄 대로 굴러가는데, 퇴근하자마자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숙제시키고 공부도 봐주고 재우고 나면 겨우 남편이랑 잠깐 간식타임 가지다가 얼마 안 가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그러다 오랜만에, 너무 오랜만에 진샤님과 통화를 했다. 왠지 평소에 시집도 엄청 잘 읽고 있을 것만 같은 분이다. 이야길 나누다 보면 정신없는 와중에 정신이 조금 차려질 것 같았다. 일 년 만의 전화였다.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반갑게 받아주어 고마웠다. 그리고 역시나, 작가님은 최근 읽었던 김보나 시인의 시를 추천해 주셨다. 그간 하지 못한 말들도 와르르 쏟아내었다. 그러다 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또다시 목소리 들을 날까지, 진짜 조우할 날까지 서로 잘 지내자며 뭉클한 인사를 나눴다.
김보나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 시도 좋았지만, 그 시는 가을쯤 읽으면 좋은 느낌이었다. 이번 시요일을 위한 작품으로, 발랄하고 상큼하게, “서칭 포테이토”를 선정했다. 한 해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나름의 문장 쓰기도 조금 인쇄해 갔는데 그건 영업 비밀이다.
전 세계적으로 감자칩은 모두가 좋아하는 과자 아닐까 싶다. 감자칩 종류를 검색해 보니, 포테이토칩, 포카칩, 수미감자, 레이스, 프링글스, 스윙칩, 클레오파트라, 생생감자칩, 허니버터칩, 눈을 감자, 자가비, 그리고 이름 모를 외국의 모든 감자칩들,,, 등등.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자칩을 고르라면 역시나 연두색 양파맛 포카칩이다. 시의 소재를 감자칩으로 정한 건 탁월한 소재 선정이었다고 본다.
서칭 포테이토의 뜻은 ”(나만의)감자 찾아보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린 모두 매일 순간순간마다 나만의 감자칩을 찾아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고르고, 양말을 고르고, 신발을 고르고, 점심 메뉴를 고르고, 누군가에게 보낼 선물과 메시지를 고르고, 퇴근 후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하며 살아간다. 일단 고른 후에는 그 감자칩이 뭐든 간에 기분 좋게 봉지를 뜯고 맛있게 먹는다. 어제는 수미칩, 오늘은 포카칩, 내일은 무슨 칩을 먹을까를 생각하면서.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옥수수칩인 도리토스만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하와이의 푸르른 바다와 그 바다 위를 헤엄치던 바다 거북이다.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떠난 하와이에서 우리는 배를 타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까지 가는 투어를 신청했었다. 수중 오토바이를 타고 바닷속에 들어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도 하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떠 있는 배 위에서 한가롭게 누워 경치를 즐기기도 했다.
아뿔싸. 그러다 점차 뱃멀미가 오기 시작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빨리 뭍으로 가고 싶던 찰나, 같이 배를 탄 외국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바다거북이가 나타난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기회라니, 그건 참 흔치 않은 일 아니겠는가. 심지어 바다거북은 행운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남편은 내가 괜찮은 지 옆에서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토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른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거북이의 등을 만지고 왔다. 나도 멀미만 안 했다면 거북이랑 인증샷을 찍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우리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장은 활짝 웃으며 다가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도리토스를 주고 가셨다. 메스꺼워 그 당시엔 먹을 수가 없었다.
오래지 않아 바다 거북이는 헤엄쳐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마침내 배는 뭍을 향했다. 육지에 도착해서 맛본 도리토스가 세상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바다 거북이 등은 못 만졌지만 도리토스를 먹으며 잊지 못할 뱃멀미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 그리고 멋진 바다거북을 추억했다. 어떤 과자는 추억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무수한 감자칩 종류들이 뒤섞인 이 세상 속에서 다양한 감자칩을 맛보며 내 취향을 알아가는 게 인생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중에 어떤 감자칩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어떤 감자칩은 아름다운 기억이 되고, 때로는 아쉬운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감자칩을 고르고, 바스락 거리는 봉지를 팡, 하고 뜯어 바삭한 과자를 입에 톡 털어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던 그 순간의 즐거움은 모두 오롯이 나의 것, 나의 인생이다.
서칭 포테이토의 마지막 행 ‘인생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과자뿐이었는지도!’가 약간 씁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더없이 긍정적이고 유쾌한 멘션으로 보였다. 내가 무언가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쁨이다. 내가 고를 수 없었던 것들과, 여러 가지 이유로 고르지 못했던 일들은 애당초 내 감자칩이 아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오늘의 감자칩을 지금 고르고 있지 않은가!
우린 여전히 고를 수 있다. 우린 지금도 선택할 수 있다.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내가 언제든 고를 수 있는 과자들이 바스락 거리며 내 앞에 놓여있다. 그 과자들을 어여삐 여기며 즐겁게 먹어보자. 와그작, 와그작, 그 소리는 바로,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는 뜻일 거다.
서칭 포테이토칩
- 김보나
봉지를 열자마자 이것은 궁극의 감자칩. 낚시에, 드라이브에, 여가에 잘 어우러질 것 같았습니다. 싸우는 도중 자리를 비운 연인이 돌아와 이것을 내민다면 못 이기는 척 받아 물며 한풀 누그러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 입에 물고 게임을 하자 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입 맞추고 어우야 어깨를 툭 치는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냄새를 맡은 아이가 다가와 하나만 달라고 손을 내밀면? 화가 날 것도 같았습니다. 사우론에게 절대반지가 있다면 세계엔 절대과자도 있는 법. 백 살까지 산다면 이 과자 덕분이라 말할 겁니다. 주마등처럼 어떤 장면들이 선택되어 눈앞을 스치겠지요. 그런데 그 장면들은 누가 고른 거지요? 알고 보면 인생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과자뿐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