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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Jan 12. 2021

이 백화점은 잠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서평]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HD 컬러의 총천연색 꿈을 꿀 때도 있고 명암의 대비가 확실한 흑백 꿈을 꿀 때도 있다. 하늘을 나는 꿈,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연예인이 나오는 꿈 등등 꿈의 종류는 장르 불문 스펙터클하고 다양하다. 가끔 오랫동안 머릿속에 잔상이 남은 꿈 속 장면이 데자뷰가 된 적도 있다.


꿈속에선 뭐든지 가능해진다. 휘황찬란한 파티장에서 드레스를 차려입고 칵테일을 마실 수도 있고 눈부신 설원에서 스키를 타다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죽다가 살아나더라도 놀랄 것 없고, 전혀 맥락 없는 두 개의 꿈을 연달아 꾸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꿈속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때에 따라 꿈인 걸 인식하는 꿈,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꿀 수도 있다.


비틀즈의 유명한 노래 <yesterday>는 폴 매카트니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에서 탄생했다.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러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둥근 형상을 꿈에서 본 후 벤젠의 원자 구조가 고리 모양임을 깨달았다. 꿈을 통해 메카트니는 노래를 만들었고, 케쿨러는 난제를 풀 실마리를 발견했다. 이 같은 일들은 과학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수수께끼이자 미스테리다.


꿈을 통해 영감을 얻고 해답을 찾은 사람이 어디 이들 뿐일까. 우리 역시 꿈을 통해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신비한 일들을 체험한다. 어쩌면 꿈은 아주 특별하고 신기한 또 다른 세상과 접속시켜주는 미스테리한 연결 고리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펼쳐지는 세상. 반드시 잠들어야만 갈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라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된 소설이 있다. 지은이는 과거 반도체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흔한 직장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미예 작가는 글을 쓰는 데 매진하기 위해 퇴사를 하게 된다.


공모전에 출품 하거나 신문사에 투고해본 적도 없는 완벽한 신인이었던 그녀는 2020년 4월,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 1812%달성 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리디북스 플랫폼을 통해 전자책을 출간한다. 그녀의 소설은 놀랍게도 여타 유명 작가들을 제치고 3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독자 평점 4.8을 기록하며 팬덤이 구축되었고 종이책을 만들어달라는 독자들 요청 덕에, 2020년 7월, 소설은 종이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종이책으로 재탄생한 소설은 지금까지 12만 부 이상 팔렸다. 종이책을 만든 후 전자책을 제작하는 기존 출판 방식을 거꾸로 밟아낸 그녀는 ‘역주행의 신화’를 창조했다. 신인 작가의 놀라운 성과, 재밌고 기발한 이 소설책의 제목은 바로 <달라구트 꿈 백화점>이다.


달라구트 백화점은 잠들어야만 방문할 수 있다. 도시의 거리에는 백화점 외에도 많은 상점들이 다양한 장르의 꿈을 취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잠잘 때 입은 옷차림 그대로 도시에 도착해서 여러 상점을 구경하며 꿈을 산다. 털복숭이 녹틸루카는 잠결에 옷을 훌러덩 벗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옷을 다시 입혀 주느라 분주하다.


거리의 상점들은 일상적인 꿈, 낮잠용 꿈부터 예지몽, 태몽, 악몽까지 아주 다양한 장르의 꿈을 팔고 있다. 모든 꿈은 전부 후불이기 때문에 돈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꿈 값은 바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다. 행복, 기쁨, 환희, 공포, 두려움, 긴장 등 그 중에서 값이 꽤 나가는 것은 ‘설렘’이다.


주인공 페니는 도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하고 고풍스런 백화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취직하는 게 소원이다. 월급도 많고 복지도 잘 되어있는데다 백화점의 주인 달러구트는 혈통도 남다르다. 발랄하고 귀여운 페니는 면접에 통과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와 지식은 물론 유명한 꿈 제작자들의 역대 작품명까지 줄줄 외운다. 주인공인 그녀가 면접에 떨어질 리가 있을까. 페니는 당당히 합격한 후 달러구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악당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주인공이 큰 위기에 처하지도 않는데 일단 책을 펼치면 내려놓기가 힘들다. 아까워서 천천히 읽었다는 독자들의 마음을 십분 공감했다. 페니가 만나는 잠든 손님들, 꿈을 꾼 후 바뀌는 손님들의 일상, 유명 꿈 제작자들과의 만찬 등등 이야기는 하나같이 재밌고 신선하다.


눈물이 흐를 만큼 감명 깊은 부분도 있었다. “올해의 그랑프리”상을 받게 된 어느 꿈 제작자의 수상 소감을 읽을 때 울컥하고 말았다. 달러구트 사무실 한 켠에 높이 쌓인 먼지 덮인 상자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도 엉엉 울었다. 삭막했던 내 마음 속에 촉촉한 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실 잠자는 시간을 아깝고 쓸모없는 시간이라 여긴 적이 많았다. 밤을 새가며 무언가에 매진하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잠든 시간이야말로 비생산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 나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잠자는 시간이야말로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정말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은 이후 아침에 잠에서 깨고 나면 나는 왠지 지난 밤 달러구트 백화점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사이에 백화점에서 꿈을 사고 페니와 이야기를 나눈 것만 같다.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안보이고 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갑갑한 일상 속에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 전하는 가슴 뭉클하고 따뜻한 판타지 세계에 가보고 싶지 않은가? 반복되는 삶에 지친 어른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지루해진 어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처럼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마법같이 일상을 바꾸는 책, <달러구트 백화점>을 읽어보면 어떨까?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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