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성을알면달라지는것들 (김경아, IVP)
"성관계도 하고 자녀도 낳았으나 정작 아이와 성에 대해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 20p"
<진로와 소명 연구소> 성교육 팀장인 김경아 작가의 책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의 도입부에 나오는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이다. 많은 것을 공감하게 하는 이 짧은 한 문장을 읽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성관계를 하고 두 딸을 낳은 나는 과연 아이들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성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두 사람의 사랑의 결합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되는 아름다운 성에 대해 자녀들과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준비된 어른일까.
내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고 초경이 시작되었을 때 나의 엄마는 큰일이 난 것처럼 쉬쉬했다. 내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엄마가 보이는 반응을 살피던 나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부모가 아이의 몸에 대해 보이는 반응, 그것이 바로 '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첫 느낌이 된다. 비단 나의 엄마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에 대해 잘 알려주고 싶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말을 꺼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성의 핵심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이다." -21p
성에 대한 모든 교육과 가르침은 모두 나의 몸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몸이 소중하기에 타자의 몸도 소중하다. 내 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익히며 동시에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손을 잡고, 몸을 기대며 스킨십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아름다운 성은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No means No."
존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의 거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심지어 성관계에 이르기까지 존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다. 나와 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비뚤어진 인간성을 비추는 부끄러운 민낯을 이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닦아야 할 때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몸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나의 아름다운 성을 올바르게 누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성교육이라 할 수 있다. 성교육이란 바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교육이며 '인간됨'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경아 작가는 우리 모두가 성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 역시 성적인 존재이며 자기만의 세계를 이루어가는 독립적인 주체임을 시시때때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적인 존재로 자라가는 과정 중에 '성'에 대한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 가장 좋은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가 아니어도 '성'에 대해 올바른 관념과 지식을 쌓게 도와주는 어른이 존재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성'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의 부재로부터 발생하니까 말이다.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주거나 터놓고 말할 대상이 없는 아이들은 음지로 들어가 폭력적이거나 과장된 자극적인 영상을 보고 배운다.
왜곡된 영상이 아니라 올바른 성지식을 갖춘 어른의 존재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사랑은 책임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 '생명의 엄중함'과 '피임법'을 동시에 말해주는 어른의 존재가 많아져야 한다고 한다.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수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과 헌신의 정도는 그 속도가 비슷해야 하니까 말이다.
책 속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감수를 거친 생물학적 성(sex), 사회 문화적 성(gender)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들이 실려있다.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할 수 없는 '간성'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간성인, 동성애, 트렌스젠더에 관한 뜨거운 감자같은 이야기들은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여 사유의 확장을 돕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도 처음부터 자녀들과 사랑과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멋진 엄마는 아니었다고 한다. 자녀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차별적이고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들을 깨달은 그녀는 성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면서 준비된 성관계에 대해,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고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과 내용을 습득하려 애써온 그녀의 몸부림이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에 총망라되어 있다.
만약 학교 체육 시간에 신체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발기 된 남학생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짓궂은 친구들과 무리지어 변태라고 놀릴 것인가? 아니면 그저 못 본 척 자리를 피할 것인가? 김경아 작가의 넷째 딸은 자신의 체육복 잠바를 벗어 남학생의 허리에 둘러 주며 놀리는 친구들과 놀림받는 남학생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지혜를 발휘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며 나를 존중하는 것과 같이 상대를 존중하는 '인간됨'의 태도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 나의 몸을 긍정하며 타인을 존중하기 원하는 사람,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국민일보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뉴스앤조이 내가 뽑은 올해의 책에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 책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을 읽고 달라질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축복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