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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클레어 Oct 17. 2024

잠깐 다이소 다녀올까?

  

“이것저것 살게 있네. 엄마랑 마트 갈 사람 있어?”

“나가기 귀찮아. 오늘은 엄마 혼자 다녀오면 안 돼?”

엄마, 어릴 때는 내 뒤만 졸졸 따르던 아이들도 커 갈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라. 

괜찮아. 이럴 때마다 내가 쓰는 마법의 단어 하나가 있거든. 

그건 바로 ‘다이소’야. 


“그래? 엄마 다이소도 들러야 하는데 정말 안 나갈 거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꾀어 보아도 안 되던 게 다이소에 가자면 애들이 벌떡 일어나. 재미있지? 다이소에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원하는 게 다 있기 때문이래. 학용품, 장난감, 운동용품 등 좋아하는 물건들이 즐비한 보물창고인 샘이지. ‘견물생심’이라고 구경하다 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조건을 내 걸고 사주는 걸 기대하기 때문일 지도 몰라. 아무렴 어때? 아이들이 후다닥 옷을 입고 선뜻 집을 나서는데.    

 


소리꾼이 꽃이라면 고수는 나비다.

“저 쪽 공원에 분수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가자.” 

다이소는 우리 아파트 정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가야 해. 

그런데 좀 전에 내가 말한 공원은 왼쪽으로 가야 나오거든. 다분히 의도적인 문장의 의미를 감지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마치 아기 오리 떼처럼 나를 따라 오지. 친정엄마가 그러더라. 혼나고 나서도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기오리들 같아 보여 웃음이 났다고 말이야. 아이들은 엄마가 정답인 세상 속에서 사니까 그렇겠지? 어른이 되어도 부모의 존재가 결코 작아지는 게 아닌데 어릴 때는 오죽할까? 아이들을 이끌고 공원에 들러보니 여름을 알리는 올해 첫 번째 분수가 물을 뿜고 있어.


“와~ 정말 분수가 나오네.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자.” 

이렇게 말하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사진을 찍겠다고 한껏 포즈를 취해. 엄마의 할 일은 여기까지야. 게임 끝이지.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알아서 노는 상황을 이어가. 엄마는 슬쩍 판을 깔아주기만 하는 거지. 물을 보며 신난 아이들은 분수 주변을 걷거나 뛰곤 해. 공원 내 운동시설 위에 올라가서 하나씩 건들고 해 보기도 하지. 바로 옆 놀이터도 있으면 금상첨화야. 그네 타고 철봉에 매달리고 미끄럼틀을 타. 그럼 엄마는 이제 뭘 할까? 아이들이 만지고, 뛰어놀며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얼씨구” 추임새를 넣는 고수로 변신하는 거야.



엄마, 우리 어릴 적에는 주말 판소리 공연을 방송하곤 했잖아. 송해 선생님이 나오는 『전국노래자랑』에서 판소리 무대를 봤던 기억도 슬쩍 나. 보면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과 옆에 앉아서 북을 치는 고수까지 2명이 나오잖아. 고수는 판소리나 산조에서 장단을 치는 사람을 말한대.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에 의하면 말이지. 판소리는 소리북을 사용하고 산조에서는 주로 장구를 사용한대.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은 단순히 소리꾼의 노래를 반주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장단의 한배를 조절해서 소리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을 보완하기도 하지. 고수는 추임새로써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도 하고, 청중의 반응을 유도하여 소리판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도 한 대.      


엄마의 역할도 똑같다고 생각해. 아이들이 신나게 놀 때는 그 흥을 유지하거나 고취시켜 주도록 

“우와~ 잘한다.”, “어머! 대단한 걸.” 하고 감탄사를 해 주는 거야. 또한 고수는 소리꾼의 상대 역할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기도 하고, 소리꾼이 사설을 잊어버렸을 때 사설을 일러 주기도 한다잖아. 이처럼 신나게 놀던 아이들도 어느새 놀이의 흥미를 잃고 배회하는 때가 생기곤 해. 엄마는 그때를 놓치지 말고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고 보여주며 함께 어울려 주면 돼. 고수 덕분에 소리꾼이 실수 없이 무대를 내려오듯 아이의 놀이도 알차게 마무리가 될 거야. 

만약 소리꾼이 가사를 잊었는데 옆 고수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면 어떨까? 아마 재미없고 형편없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그깟 아이들 노는 걸로 어른의 공연과 비교하며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한다면 내 대답은 이래.


“아이가 노는 순간은 잠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는 양이 늘어나요.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은 아이의 놀이에도 적용되지 않을까요? 어른들 눈에는 똑같은 술래잡기, 매달리기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근력이나 유연함 등 각종 체력이 착착 쌓일 겁니다. 이왕 놀게 할 거면 아이가 제대로 놀았으면 좋겠어요.” 


엄마, 놀이터에서 우리 애 말고 다른 아이들을 지켜본 적 있어? 가만 보면 어떤 아이 A는 공을 튕기고 모르는 애랑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다가 어느새 이름 모를 풀을 쉼 없이 뜯고 있어. 홍길동 저리 가라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지. 

또 다른 아이 B는 정반대야. 처음 놀이터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딱히 뭘 하지 않고 빙빙 주변을 맴돌아. 마치 놀이터 순찰요원처럼 살펴보되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질 못해. 바다에서 목적지 없는 선장이 이리저리 좋다핸들을 돌리는 느낌이지. 그럼 어떻게 될까? 어디든 도착하지 못하고 망망대해에 떠 있을 수밖에 없어. 제대로 논 것이 없어. 위 두 아이는 놀이터에서 똑같이 놀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야.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9 to 6 정해진 8시간 동안 일을 해. 나중에 보면 막상 이뤄 낸 업무 성과는 제각각이잖아. 아이가 제대로 놀았는지 아이가 돌아온 후 반응을 보면 알 거야. 실컷 놀아야 기쁘고 힘이 나잖아. 진정 제대로 놀았다면 집에 와서 지친 모습이 역력하지만 표정은 밝고 생기가 넘실대는 얼굴을 마주하게 될 거야. 물론 밥맛도 좋아서 맛있게 먹겠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 환경 속에 던져지든 제대로 놀고, 일도 즐기며 사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엄마도 내 말에 동의하지? 그럼 어서 일어나서 “다이소 가자!”라고 말하자.      



밖에 나가 노는 병아리를 위하여

엄마, 집을 나설 때 아이들은 생각도 못한 공원과 놀이터를 거쳐 실컷 놀았잖아. 이제는 진짜 목적지 다이소로 향해. 물론 시간은 훌쩍 지났지. 다이소를 갈 때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 집에서 나와 곧장 다이소부터 갔을 때 사려는 물건에 대한 투정과 실랑이가 잦았거든. 갖고 싶은 물건들이 많으니 당연한 마음이라 이해는 했어. 그런데 이렇게 미리 실컷 놀게 한 후 다이소에 가잖아? 물건을 사려는 아이의 고집이 현저하게 줄어들더라. 내 제지에 크게 서운해한다거나 투정 부리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어. 아마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시킨 후라 그런 건 아니었을까? 


전문가들이 말하길 사람은 우울할수록 쇼핑중독이나 음식중독에 빠진대. 텅 빈 허전함을 대신 채우기 위한 대체재를 찾는다고 하지. 한참 신체를 움직이며 놀고 난 아이들 체력은 소진되었을지 몰라. 그러나 아이 마음속은 순대의 빼곡한 당면들처럼 가득 들어찼을 거야. 그러니 물건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결국 원래 사려던 천 원짜리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 사서 왔어. 아이들은 뭐 하고 있었을까? 내 뒤에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졸졸 따라오더라.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알을 같이 쪼아야 한다'는 뜻이래.

운동을 즐기는 아이,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가 되게 하려면 아이 혼자 나가놀게 해선 도무지 안 나가더라. 


엄마가 어미 닭이 되어 도와줘야 귀여운 병아리는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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