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난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후 순경채용 필기시험을 붙을 실력은 된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다행히 다음 필기시험에 재 합격 할 수 있었지. 그런데 가족들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눈에 보였어. 아마 다시 체력시험을 망칠까 봐 그랬을 거야. 필기시험 합격 발표 후 약 2주 뒤 체력 시험을 치르게 돼. 상황상 결국 체력점수가 관건인데 또 망칠 순 없단 생각이 들더라. 1차 채용시험에서 떨어져 정신을 차린 후 노량진의 헬스장에 다녔긴 해. 그렇지만 체력시험에 적합한 점수를 만들기에 내 체력은 턱없이 부족했어.
고민 끝에 무작정 집 근처를 걷다 봐 두었던 체대입시학원에 상담을 갔어. 역시 어른은 한 명도 없고 고등학생들이 다수였지.
“현재 체력시험이 2주 남았는데 꼭 합격하고 싶습니다.”
결연한 마음으로 시작된 체대입시학원 생활은 어땠는 줄 알아? 체대 준비하는 아이들은 우선 체력이 좋단 말이야. 고등학생 틈 속에서 똑같이 훈련을 하려니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더라니까. 힘든데 자존심도 상하는 순간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제자리멀리뛰기 2m를 뛰는 여자 고등학생 앞에서 나는 150cm를 뛰는 식이야. 훈련 후 집에 돌아오면 물 먹은 종이처럼 축 쳐졌어. 뭉친 근육통 때문에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지도 못했지. 악- 외마디 소리 지르고 포기한 후 화장실을 참고 버텼어. 이때 생각한 게 '누워서 누는 변기는 누가 발명 안 해주나'였다.
엄마, 저질체력인 내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들어 봐.
당시 경찰시험 체력검사 측정과목은 제자리멀리뛰기, 100미터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악력측정 이렇게 4가지였어. 우선 선생님의 체력 테스트가 시작됐어.
먼저 제자리멀리뛰기를 뛰었어. 내가 뛴 거리는 고작 140cm. 보통 제자리멀리뛰기는 본인 키(내 키는 167cm)만큼은 나오는 게 정상이라는데 어이없더라. 깜짝 놀란 선생님은 100미터 달리기를 시키지도 않았어. 웃음기 하나 없는 심각한 표정으로 “단기 체력 키우기에 돌입하겠습니다.” 란 말씀만 했어. 곧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시키더라.
하나씩 설명을 하자면, 먼저 100미터 달리기와 제자리멀리뛰기는 다리 근육을 만들어야 한 대. 이때 한 훈련은 오리걸음이야. 귀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언덕의 오르막길과 상가 계단을 올라가. 만약 이걸 해 본 사람이 있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 지 고개를 절로 끄덕일 거라 믿어.
그다음은 모래를 넣은 U자형 타이어를 목에 걸고 스쿼트를 했어. 중간마다 달리기를 하며 근육량, 속도를 체크도 했지. 뛰는 자세까지 코칭받으며 달리고 또 달렸어. 이때 나는 사람 몸에서 소금 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어.
다음은 윗몸일으키기. 근육 제로 나를 위해 선생님은 친히 농구공을 준비하셨어. 허리가 아닌 배에 힘을 주게 하는 방법이래. 몸을 일으킬 때마다 맞춰 배에 농구공을 던지는 거야. 위에서 툭하고 던지는 방식. 허리 대신 배에 힘을 주지 못하면 내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지. 저절로 배에 힘을 주게 되는 무시무시한 훈련이었어.
맞아. 나는 돈을 갖다주고 제 발로 지옥을 다녔다.
가장 자신 없던 건 '악력' 시험이었어.
보통 악력은 팔이 두꺼운 사람이 기본적으로 점수가 잘 나오는 편 이래. 나는 타고나길 팔목이 두껍지 않아. 악력이 나오지 않는 최악의 조건이지. 당시 최소 악력 25kg 이상은 나와야 과락은 면했던 거 같아.
"죄송한데 제가 손을 다쳐서요."
편의점 알바에게 거짓말하고 음료 병뚜껑을 따 달라고 부탁할 정도인 나에게 악력 20kg는 꿈의 숫자였어. 매일 악력기로 측정을 하면 고작 15~17kg이 최대치. 다른 과목과 다르게 악력은 쉽게 올라가지 않아 불안했지. 집에서는 손을 오므렸다 폈다(잼잼동작)을 했지.
집 안 청소는 안 해도 수도 없이 마른걸레를 쥐어짰어. 학원에서는 철봉 매달리기, 아령을 들고 손을 오므리기를 수 없이 반복했어.
체력시험 당일. 체력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제자리멀리뛰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m가 나왔어. 내가 멀리 뛸 때 감독관이 하는 말이 지금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거 같아.
“아이고~ 잘 뛴다!”
어릴 적부터 난 100미터 달리기가 20초 내에 들어와 본 기억이 없어. 매일 꼴등을 했고, 다리 모양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받았지. 그런데 체력시험 당일 내 달리기 기록은 15초대가 나왔어. 윗몸일으키기도 횟수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가장 높은 점수대에 들어갔어. '와! 내가 이게 된다고?' 놀라움의 연속이었지.
이제 마지막, 공포의 악력시험.
시험 전날까지도 악력기를 잡으면 뭐 해. 계속 과락 점수만 나오더라. 그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하나뿐이었던 거 같아. 결전의 시간. 하필 내 앞에서 악력시험 과락자가 계속 나와 버렸어. 그날 꽤 많은 수험생이 과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거든. 엉엉 우는 수험생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정신으로 악력기를 잡았는지 사실 기억도 잘 않아. 송진가루를 묻히고 손바닥 간격에 맞게 악력기를 조정했던 거 같아. 힘을 주려던 그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면 힘이 솟는단 말이 갑자기 기억났어. 난 운동장에 떠나가게 ‘족! 발!’을 외쳤어. 결과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던 꿈의 숫자 29kg. 그렇게 나는 경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어.
우리는 동백꽃인지도 모른다
27년 평생 ‘저질 체력’이라 여기고 타고나길 약하다 여긴 내 생각이 무색하게 고작 2주 만에 눈부신 성장을 한 거야. 몇 달, 아니 몇 년은 운동해야 잘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지난날이 어이없었지.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잖아. 눈이 오는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봐 바. 오히려 겨울에 피니까 더 아름답고 특별해 보이던 걸. 살다 보니 정해진 때라는 건 어디에도 없더라.
내가 간절히 원하고 잘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 할 수 있는 무한함이 엄마의 몸 안에 있음을 우리 잊지 말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