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길 운동을 못했고 그래서 운동이 싫었다
“제발 5등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엄마, 이건 매년 가을 운동회 전날 간절히 빌던 기도 내용이야.
1등이 아니고 하필 5등이었을 거 같아?
나는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못했거든. 그것도 심각하게 못했어. 엄마 말로는 내가 다리를 특이하게 구부리고 뛴다나?
매년 가을 운동회 날 아침밥을 먹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더라. 출발선에 나를 포함 6명이 뛸 준비할 때 가슴은 어찌나 빨리 뛰던 지, 덜덜거리던 작은 몸이 펑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운동회 전 밤마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신은 내 소원 한 번 들어주지 않았어. 나보다 못 뛰는 아이 한 명 끼어 넣어 5등 한 번 하게 도와주시지. 3등 안에 든 아이들은 손목에 도장을 받았거든. 나는 6년 내내 받아 본 적이 없어.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별거인가 싶지만, 그날은 ‘별거’ 맞았어. 특별함을 보증하는 도장.
엄마, 나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체질이었어. 사소한 감기에 걸려 재채기 몇 번 하다 바로 폐렴으로 이어지고 결국 입원하곤 했지. 나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낯익은 단골환자였어. 다니던 대학병원 소아과에서 “너 또 왔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 말 다 했지.
당시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은 ‘심장이 약한 것 같다.’였어.
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해. 나는 제대로 심장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거든. 심장 관련 질환 병명을 진단받은 적조차 없고 말이야. 심장이 문제였다면 소아과가 아니라 내과 쪽으로 옮겨 제대로 검사를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시골학교 안에서 ‘심장이 약한 아이’라는 연약한 꼬리표는 매년 담임선생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어. 내가 전력질주를 하는 날에는 골인지점에서 달려 나와 물으시던 선생님들.
“가슴이 아프지 않아? 숨 쉴 수 있어?”
혹여 심장에 무리가 갔나 싶어 내 어깨를 잡고 흔들리던 선생님의 눈빛이 떠올라.
엄마, 사람은 듣는 말에 따라 그에 걸맞게 변하는 거 같아. 남들에게 몸이 약하다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어느새 나 스스로 병약하게 느껴졌거든. 점점 자연스레 뛰노는 것이 부담스러웠어. 활발히 움직이지 않고 주로 앉아서 조용히 노는 것을 즐기는 학창 시절을 거쳤지. 그 덕에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실기 점수는 아주 처참했어. 운동에 관련된 실기 동작은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지. 성적표를 보면 어이없게도 국영수보다 체육과목이 가장 낮은 점수였어.
이처럼 나에게 운동이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벽이더라.
경찰이 되고 싶다
엄마, 체력이 약했던 나는 어영부영 버티며 대학에 진학했어.
‘이제는 진짜 운동과 멀어지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했어. 더 이상 체력에 관련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까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그러나 잠시의 시간은 기한 있는 평화였나 봐.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되고 싶은 거야. 맞아. 어이없게도 경찰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순경공채시험은 필기시험과 더불어 체력검사가 있잖아. 체력검사를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왜 경찰이 되고자 했을까?
대학을 졸업 후 다니던 회사를 가려면 셔틀버스를 타야 했어. 셔틀버스 정류장은 00 지구대 앞.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지구대 앞에서 셔틀버스를 탔지.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보다 일찍 나와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등 뒤로 외마디 소리가 들렸어.
“빨리 잡아!”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어떤 남자가 전속력을 다해 지구대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나왔어. 도망친 남자는 지구대 마당에 주차된 순찰차 보닛을 밟고 담장을 넘었어. 다행히 곧장 따라 달려온 젊은 경찰관들이 그를 잡아 엎드려 제압시켰어. 인생을 바꿀 한 장면이 내 눈앞에서 펼쳐진 거야.
‘바로 저거다!’
당시 회사에 출근한다는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일찍 깨달은 게 있어.
나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을 끔찍이 여기는 사람이란 걸. 인생 첫 회사의 로망을 한방에 날려버린 뻔한 루틴 때문이었지. 전 달과 다음 달, 그리고 매 달, 매월 초, 중순, 말, 하는 일이 쌍둥이처럼 토씨하나 빠짐없이 똑같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AI가 발명돼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단순한 건 로봇이 하자 좀)
가끔 맛있는 점심 메뉴가 나오면 그나마 다른 날이라고 봐야 할까? 빙빙 도는 반복의 틈 속에서 다람쥐가 되기 싫었어. 오늘 내일 모레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사나 싶더라. 입사한 지 몇 달도 채 안되었지만 매너리즘의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때,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DVD를 켜 놓은 것처럼 플레이된 동영상을 상영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2명의 경찰관이 배우가 되어 알려 준 거야.
‘그래! 경찰이 되자.’
경찰학원 상담하는 D-DAY. 서울 본사에 출장 갔다 오는 기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향했지. 상담하려고 간 경찰학원에서 난생처음 보는 놀라운 풍경을 보았어. 600여 명이 도서관 빼곡한 책들처럼 촘촘히 들어차 있더라. 멀리 보이는 강사 얼굴은 자리 근처 천장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으로 대신하며 열을 내고 있었지. 신기하게도 숨이 막힌다는 생각보다 '나도 어서 빨리 이 공간에서 콩나물처럼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경찰공무원학원 직원은 이미 확고한 내 의지를 눈치채고서 이렇게 말했어.
“잘하실 거 같아요. 열심히 하시면 10개월 내 합격가능합니다.”
1년도 안돼서 내가 경찰관이 될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그동안 좀처럼 뛰지 않았던 내 심장 '이제 더 이상 나는 두근거릴 기회가 없이 늙어가는구나' 라며 심장의 떨림에 대한 기대를 버린 지 오래였어. 그런데 갓 잡은 물고기가 바닥에서 몸을 비틀며 팔딱이듯 힘차게 뛰고 있더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0개월 만에 합격한 여경 합격수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어. 어쨌든 학원까지 알아봤으니 설 보너스까지 챙겨 무슨 사고 친 사람처럼 급한 퇴사를 했어. 갑작스러운 퇴사에 회사 직원들이 의아해 할 정도였지. 누군가는 내가 로또가 됐다는 소리도 했다는데 알 게 뭐야. 그 당시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됐더라도 나는 고민 없이 노량진으로 달려갔을 테니까.
엄마, 노량진에서 우여곡절 많던 수험생활 2년이 되어갈 즈음 순경 채용 필기시험에 합격했어. 세상을 다 가진 듯 뛸 듯이 기뻤지. 그러면 뭘 해. 뒤 이어 치른 체력시험은 정말 최악이었어. 100미터 달리기를 뛰는데 옆에서 같이 시험 본 수험생이 하는 말이 생각난다.
"천천히 뛰셔서 과락 맞으실까 봐 제가 다 조마조마했어요."
같은 수험생이 봤을 때 택도 없는 체력이었던 거지. 그래도 체력점수 과락은 없었어. 체력시험 과락을 면하면 뭘 해? 필기와 실기 점수를 합산한 점수가 낮았거든. 결국 최종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지. 예상했음에도 첫 시험 고배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
'이 낡은 육교를 그만 건너고 싶었는데 나는 또 여길 걷고 있구나.'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은 직후 노량진역 육교 위에서 남이 보든 말든 펑펑 소리 내서 울고 말았지. 당시 노량진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생이 나중에 해 준 말이 있어.
“육교에서 귀신같이 머리 긴 여자가 서럽게 우는 거야. 이상한 여자 같아서 피하려고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누나여서 그냥 아는 척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