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취향을 가진다는 것

우리 곁에 머무는 작은 단짝

by 밝은 미인


가족 안에서도 취향은 다르다. 우리 집만 해도 면 하나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우리 부부는 라면을, 아이들은 파스타를 좋아한다. 남편은 라면에 달걀을 넣으면 안 된다 하고, 나는 달걀이 없으면 라면 같지 않다 여긴다. 아이들 역시 제각각이다. 첫째는 오일 파스타만 먹고, 둘째는 크림 파스타만 고집한다.


개인의 취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반복된 경험 속에서 자기 입맛과 맞닿는 순간이 있어야 굳어진다.

80년대에 태어난 우리 부부는 허기를 달래주던 라면 맛을 기억하며 밥 대신 라면이라는 취향을 얻었다. 아이들은 워킹맘 덕에 자주 사 먹던 파스타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을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회적 배경과 경험의 산물이라 했다. 우리 집 라면과 파스타 역시 단순한 음식 취향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이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취향은 음식에만 있지 않다. 늘 지니는 물건, 자주 가는 장소만 봐도 그 사람의 취향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취향은 더 또렷해지고, 남의 눈보다 자기만족을 중시하게 된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모습이 멋져 보이는 것도, 배달 기사가 짬뽕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자기만의 결을 오래 지켜온 사람은 자연스럽게 빛이 난다.


취향을 가진 사람은 아프지 않고 활기가 있다. 외롭지 않다. 마치 인생의 단짝처럼 늘 곁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취향을 보증하는 건 결국 경험이다.

대학시절, 언제나 과 수석이던 동기는 당연히 전공을 살려 이공계 대기업에 취직할 줄 알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몇 년 뒤 강남의 한적한 주택가에 카페를 열었다. 그의 마음을 지배한 건 ‘커피’라는 취향이었다. 세계 각국을 돌며 질 좋은 원두를 찾고, 늦은 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팅하고 커피 도구들을 씻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분명 힘든 일상이었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의 확고한 취향 덕일 것이다. 몇 년 후 우연히 검색 중 눈에 들어온 그의 카페는 이미 ‘커피 맛집’으로 이름나 있었다. 고단했을 터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살았다. 그래서 아프지 않았고, 활기가 넘쳤으며, 외롭지 않았다.




라면이든 파스타든, 커피든 결국 취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무언가다. 확실한 건, 아직 우리는 더 단단한 취향을 만들어갈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혹여 아직 자신만의 취향이 선명하지 않더라도 조급할 필요는 없다. 우연히 만난 작은 호기심 하나가 평생의 단짝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저녁, 라면에 달걀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자기만의 취향을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