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는 행복을 낳았다.

by 글한송이
딸아, 너는 나의 행복이다.

성희의 첫 아이는 딸이었다. 결혼 5개월 차 신혼 생활을 즐기기도 전에 찾아온 딸은 10개월 간 무럭무럭 자라 건강하게 태어났다. 결혼 전후 삶이 얼마나 다른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기는 천사처럼 예뻤지만, 그건 오직 잠에 들었을 때에만 해당됐다. 육아는 전쟁이었고, 전쟁이 곧 성희의 삶이었다. 엄마 아빠의 품속이 아니면 잠들지 않았고, 간신히 재워 샤워를 하던 도중 다시 엉엉 울어 샴푸도 헹구지 못하고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아기가 우는 건 당연하다지만 울어도 너무 울었다. 아파트 이웃이 찾아와 항의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급히 먹어야 하는 고달픈 육아였지만, 걷기 시작하고 옹알이로 "엄마"를 내뱉자 그날의 피로가 모두 풀렸다.


다음 해, 둘째 딸이 태어났다. 남편을 꼭 빼닮았던 첫째 아이와 달리 둘째는 성희와 붕어빵이었다. 커다란 눈, 통통한 뺨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양수가 터진 바람에 낳지 않는 걸 추천한다는 의사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둘째였기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다행히 잘 먹고 튼튼하게 큰 둘째는 이제 언니보다 키도 크고 훨씬 씩씩한 막내딸이 되었다.


연년생이었기에 첫째보다 둘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첫째는 서울에서 결혼해 살고 있던 막내 언니에게 맡겼고, 다시 네 식구가 함께 지내려 할 때쯤 IMF로 집안이 기울었다. 나가서 일을 하자니 아기들이 눈에 밟혔고, 설상가상으로 첫째가 아프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육아에 전념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있어 좋다 했지만, 성희는 점차 자신만의 인생이 없음에 무너져 내렸다.


두 아이가 학교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못다 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했다. 첫째가 이른 사춘기로 비뚤어졌고, 집에 밤 10시가 되어야 들어오는 등 일탈을 감행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기 때문일까,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는 첫째에게 더욱 매서운 채찍질을 했다. 미안함과 속상함이 분노로 표출됐고, 많은 상처를 입혔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딸들에게 한 번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첫째 아이가 말했다. 그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거 알고 있었다고, 이겨내 줘서 고맙다고.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어 강사도 되었다가, 공부방 선생님도 해보고, 시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 사서도 해봤다.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해 지금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코디네이터였으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둘째는 무조건적으로 응원했다. 걱정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예쁜 마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첫째는 반대했다. 이젠 다 컸는데, 여전히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싶어 화가 났다.


"엄마가 병나면? 공부하고 싶은 거면 해, 근데 우리 때문에 하는 거면 난 싫어."


퇴근 후에 있는 자격증 수업에 가족들이 약 2년을 함께 고생했다. 신랑이 불평불만 없이 가사를 분담했고, 아이들도 집안일을 도와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에게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의 기회를 빼앗겨야 했던 설움은 아마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거기서 오는 결핍으로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 중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다른 학문 스터디에 도전하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었으나, 아이를 낳으며 단절된 경력 탓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두 딸이 없었으면 멋진 사람으로 살 수는 있었겠으나, 행복했을지는 확신이 없다. 딸들은, 성희의 행복이다. 성희는, 딸들에게 멋진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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