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는 몇 년째 출근 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중국어 공부에 한창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노안으로 충분히 즐기지 못하지만, 언어는 쉐도잉 학습이 가능해 다행이었다. 보고 읽고, 따라 쓰고, 이후부터는 들으면서 따라 하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 성희는 아침을 그렇게 연다.
어렸을 땐 꿈이 많았다. 여군이 멋있어 보였고, 성악가의 노래가 가슴을 울렸다. 아이들을 좋아해 결혼하면 넷은 낳아야지 생각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과학 시간, 실험실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흥미가 생겼고, 화학이라는 학문을 보다 깊이 공부하고 싶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두 포기했지만.
못하고 자라서, 남들을 부러워만 한 탓에, 성희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하교 후엔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여름 방학 때는 수영 학원에 등록했고, 겨울에는 스키나 스케이트장에 데려갔다. 첫째 아이는 온갖 불평을 다 하면서도 잘 따라왔지만, 둘째 아이는 더디게 발전했다. 그래서였을까, 첫째의 작은 실수는 눈 감아주지 않았고, 둘째에게는 큰 실수조차 그럴 수 있다며 격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큰 애는 성희에게 가끔 말한다. 엄마가 너무 강하게 키워서 우는 법을 다 커서 배웠다고. 마음이 아팠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자격증 시험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할 텐데, 미안할 뿐이었다.
자식이 부족함 없이 자라기를 바란 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꿈을 갖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코 자식의 성공이 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성희의 행복이긴 했지만, 성희의 인생은 성희 것이었다. 잘 컸으면 하는 바람과, 부족한 엄마로 인해 상처 받았을 딸들에 대한 미안함과는 별개였다. <엄마가 뿔났다>라는 오래된 주말 드라마에서 "엄마"처럼 희생만 하다가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배려를 부탁했다. 흔쾌히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순탄하게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해나갈 수 있었다.
남편은 성희의 적성을 공부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두 딸이 있었지만,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첫째 딸은 엄마가 누구보다도 똑똑하다는 걸 인정했다. 성희가 주장한 일주일에 1편 독후감 쓰기를 받아들였고, 이후 글짓기 경연 대회에서 매번 상을 받아왔다. 둘째 딸은 도전을 응원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을 때도 엄마의 빈자리를 탓하지 않았고, 학창 시절 동안 일을 다니는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자처했다. 엄마가 자격증 취득에 힘쓸 때도 누구보다 먼저 파이팅을 외쳤다.
오늘 공부한 걸 내일이면 잊어버리고, 자꾸만 자신감을 잃어가지만, 성희는 내일도 책상에 앉아 펜을 들 것이다. 매일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삶은 성희의 꿈이고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