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든 통한다. 성희는 이미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지 25년을 넘어섰기 때문에 무를 수가 없다.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인생을 펼쳐볼 생각은 있지만, 행복 그 자체인 두 딸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다면 당연히 싫다. ‘엄마’는 힘들지만 ‘엄마’이기에 얻은 것들이 더욱 많아서 즐기기로 했다.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관둬야 했고, 원치 않는 일을 해가며 살아온 지난 세월은 즐겁지 않았기 때문인지 어렴풋한 기억도 잘 나지를 않는다. 자랑스러운 딸, 멋진 여성,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었으나, 과연 어머니가, 사회가, 아이들이 그렇게 봐줄지 자신이 없다. 큰딸이 쓴 브런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뚝 한 방울 떨어졌다. 그랬었지, 생각해보면서 웃기도 했다. 제 3자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성희는 이제 불필요한 형용사로 스스로를 수식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한 사람
오직 행복한 사람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IMF로 타격을 크게 입어 아이들에게 3000원짜리 요구르트 사주지 못했던 속상함을 잊을 수는 없겠지만, 제 삶을 개척해 나가며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딸들을 보며 뿌듯해할 거다. 직업병으로 얻은 허리 디스크로 고통을 곁들인 나날이 계속되겠지만, 사람들을 상대하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할 거다.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닿는 데까지 중국어 공부를 놓지 않을 거고, 독서를 즐길 거다. 벌써부터 성희는, 행복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아, 엄마는 쉽지 않다. 처음이기에 서투르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야 한다. 홀로 차가운 세상에 뛰어들게 해서 미안하다. 혹여나 따뜻함이 그리워 돌아오더라도 괜찮다. 엄마는 늘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테니, 앞으로 달렸다가, 옆길에 핀 꽃도 살피며 네 속도에 맞게 나아가라. 남에게 잘하듯 본인에게도 잘하고, 열심히 살아라. 그런 너희를 보며 엄마도 인생을 살겠다. 네가 나를 보내줘야 하는 어느 날, 미소 짓고 누워있는 나를 보며 너희 역시 웃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 행복하겠다. 그러니 너희도 행복해라. 사랑한다.